"아들 찾던 모친 목소리 아직도 생생합니다"
4.19 도화선, 김주열군 시신 발견 보도한 허종 전 부산일보 기자 인터뷰
김상철 기자 | 입력
2001.04.21 00:00:00
“사람이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내가 지금 무척 날카롭네. 자네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김주열군 실종 이후 과잉진압 여론에 못이긴 경찰이 마산시청 앞 저수지 물을 다 퍼냈던 다음날 새벽, 자유당의 한 간부가 허종 기자에게 한 전화내용이다.
허종(78) 당시 부산일보 마산주재 기자는 “30대의 한창 나이라 겁나는 게 없었는데 전화를 받고 나니 솔직히 난감하더라”고 술회했다. 4·19 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뒤 그 간부가 찾아와 ‘그땐 내가 너무 심했다. 너그럽게 넘겨달라’며 화해를 청했지만 선뜻 ‘예’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17세 청년의 시신, 허 전 기자는 다음날인 12일자 부산일보에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한 주인공이다. 당시 30대의 젊은 기자는 팔순을 바라보는 노병이 되어 현재 ‘3·15의거 기념사업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월 15일 마산에서 전개된 가두시위 이후 주열군의 모친이 실종된 아들을 찾으러 왔습니다. 때문에 많은 기자들이 주열군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시청 앞 저수지 물을 다 퍼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하자, 물끄러미 이를 바라보던 모친의 모습이 무척 비감해 보였습니다.”
허 기자에게 결정적인 제보가 온 것은 실종 27일만인 4월 11일. 곧바로 달려간 중앙동 미창부두에는 참혹한 모습의 시신이 떠올라 있었고, 주열군임을 직감한 허 기자는 셔터를 눌렀다.
“당시 시위현장에 사진기만 가지고 있어도 강제 연행돼 구타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사진기를 옷 속에 숨기고 다녔습니다.”
보도 이후 본사 데스크에게서 ‘조심하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서울에서 사상문제를 취급한다는 검사 일행이 부산일보로 내려와 취재·보도 경위를 캐묻고 갔기 때문이었다.
“기사에 대한 격려도 있었지만, 사실 시민들의 반응은 ‘보도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방을 든 채 시내를 헤매면서 ‘주열아, 주열아’ 하던 모친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후배기자들에게 “정직한 보도, 정직한 직무수행은 변하지 않는 기자의 책무”라며 “양심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한 허 전 기자는 46년 합동통신에서 기자생활을 시작, 51년부터 18년간 부산일보 마산주재 기자로 활동했다. 김상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