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그림 판결

[언론다시보기] 김보라미 변호사


   
 
  ▲ 김보라미 변호사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합니다”라는 문구 밑 청사초롱이 그려져 있던 밋밋하던 G20포스터에 어느 한 대학강사가 그려 넣었던 낙서. 한 손으로는 청사초롱을 들고 있던 근엄하게 생긴 쥐는 작년 가을 G20 행사를 국가 치적으로 강조하던 행정부 수반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우연히도 G20의 G와도 비슷하지만, 쥐 낙서를 보던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대담하게도 쥐로 변한 대통령 이미지가 떠올랐을 것 같다. 어느 가을밤 공공 안내문에 찍힌 이 낙서들은 누군가로부터는 범국가적인 행사에 심했다는 비난을 받거나, 또는 뱅크시를 연상시킨다며 칭송을 받는 해프닝으로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년 11월 초쯤 이 대학강사에 대하여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G20 방해하려는 음모행위”라는 거창한 표현으로 신청된 구속영장은 불필요한 법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시작이 되었다. ‘구속영장신청’이라는 상징으로 보이던 수사기관의 과도한 처벌의지는, 다행히 법원에 의하여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일반인들의 사각에는 더욱 비상식적인 일로 비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높으신 그 분과 얽힌 표현행위들에 대해서는, 꼬투리만 잡힌다면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국가업무를 방해하는 음모”로 기괴하게 발전될 수 있음을 느끼고 법 없이도 살아 왔던 일상들에 어떤 법조문이 관련될 수 있음도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쥐그림을 그려넣은 대학강사에 대해서 적용된 형법 제141조 공용서류 등 무효죄. 형법 제141조 공용서류등 무효죄 제1항은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기타 물건 또는 전자매체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상 또는 은닉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경우 처벌하는 죄이다. 이 경우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또는 물건은 공무소에서 보관하며 사용하고 있는 일체의 물건을 의미한다. 공공장소에 노출되어 있는 공용표지판을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기타 물건”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상적인 문언의 범위를 넘어선 지점으로, 죄형법정주의 위반의 우려가 있는 해석이다. 당초 수사기관이 일반 손괴죄로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다가 법원에 의하여 기각되자, 반드시 대학강사를 처벌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무리하게 적용 법조를 또 다시 찾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쥐 포스터에 쥐가 아닌 일반 낙서를 했어도 수사기관에서 거창하게 국가행사 방해음모를 이야기하면서 구속영장까지 청구하고 형법 제141조 제1항을 이 사건에 적용하려고 노력했을까. 왜 일반 시민이 삐딱한 표현을 하면 이와 같이 예상하지도 못한 처벌을 받는 결과에 직면해야 하는가. 이 사건을 범한 대학강사도 경범죄나 사회적 비난은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공용서류 등 무효죄 등과 같은 공무 방해에 관한 죄로 구속영장까지 신청되리라는 점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법조항의 적용은 수사기관에서는 놀라운 법 발견이며 실적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복불복에 불과하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법원의 벌금형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에 있다. 피고인이 된 대학강사의 이야기는 비단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어느 날 갑자기 당할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사람들은 쥐그림 포스터를 판매해서 대학강사에게 벌금을 내주자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이는 사법권력에 대한 발랄한 저항이며, 사법권력자들에게 일개 시민들이 벌금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일, 시민들이 오히려 피고인을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폭력적 시민불복종이다.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기관이 그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스스로 존경을 받거나 신뢰를 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법이 그 의도를 숨긴 뻔뻔한 가면을 쓰고 법치주의를 외치는 것은, 스스로 비법이 되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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