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많이 타는 뉴스가 특종이다
[언론다시보기]공훈의 위키트리 대표
공훈의 위키트리 대표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07.04 10: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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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훈의 위키트리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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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돈 탭스코트의 ‘위키노믹스’는 필자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클레이 셔키 교수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라는 저서와 함께 ‘위키노믹스’는 뉴스미디어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훌륭한 통찰을 담고 있었다.
탭스코트가 이번에는 ‘매크로 위키노믹스’를 내놓았다. 아예 한 장을 할애해서 뉴스미디어를 본격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 장의 제목부터가 매우 직설적이다. ‘신문의 종말과 새로운 뉴스의 등장’이다. 부제로 ‘미디어의 민주화가 자리 잡다’라고 달았다.
탭스코트는 “지금의 뉴스 비즈니스는 사라지고 있다”고 일갈한다. 뉴스 비즈니스는 뉴스의 희소성과 그에 따른 저작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는 뉴스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를 이렇게 정리한다.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판권을 확보하고, 이야기에 대한 요금을 청구하고, 신문사가 세워 놓은 ‘구독료’라는 벽 뒤에 그 이야기를 가둬두려는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리 벽을 세워두고 독자가 구독료를 내지 않으면 신문을 배달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중요한 뉴스는 독자를 찾아오게 돼 있다. 인터넷을 타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물론 공짜로.
중요한 뉴스인지 아닌지 독자가 결정중요한 뉴스인지, 아닌지는 독자가 결정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독자들’이 결정한다. 그 뉴스를 생산한 뉴스 미디어가 미리 정해둔 가치에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느 뉴스 미디어가 아무리 특종이라고 강조를 해도 독자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그 뉴스는 생명력을 잃는다.
이런 일은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KBS 9시 뉴스에서 보도했던 김정철 관련 뉴스다. KBS는 지난 2월15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차남 김정철이 싱가포르에서 에릭 클랩턴의 공연을 관람한 현장 모습을 보도했다. 이 보도와 관련해 KBS의 한 앵커는 트위터 상에 “큰 특종”이라고 예고했다.
막상 방송을 보고 난 트위터리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트위터에는 오히려 이 뉴스에 대한 비판이 넘쳐났다. 당시 구제역과 이에 따른 식수원 오염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김정철이 클럽에서 놀았다”는 뉴스가 과연 톱뉴스가 될 수 있느냐는 비판이었다. 주요뉴스인가, 아닌가는 그 뉴스를 보도하는 뉴스 미디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뉴스 소비자들이 결정한다는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탭스코트는 이 다수의 독자들을 ‘인간센서’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각종 소식을 알려주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란 주석을 붙여놓았다. 지구는 이들 ‘인간센서’로 뒤덮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요한 이슈가 생기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이를 확산시키고 끊임없이 보도, 조사, 논의, 재보도된다. 탭스코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때 퍼져나가는 것은 그 일이 갖고 있는 뉴스로서의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가치에 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뉴스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시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다.”
1면 톱도 반응 없으면 죽은 뉴스뉴스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역할이 ‘뉴스룸’에서 ‘인간센서’로 옮겨갔다는 말이다. 그 뉴스가 독자들 사이에 얼마나 많이 확산됐으며 얼마나 많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느 신문이 1면 톱으로 올려놓은 뉴스라고 할지라도 독자들 사이에서 별 반응이 없으면 ‘죽은 뉴스’가 된다. 이런 경우는 놀랍게도 허다하다.
기존 미디어 환경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 사이에 직접 소통이 불가능했다. 특정 뉴스에 대한 피드백을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뉴스 미디어가 “이것이 주요 뉴스”라고 차려놓은 밥상에 대해 누가 뭐라고 말하는지 독자들끼리는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상황이 영 달라졌다. 뉴스 미디어가 아무리 주요 뉴스라고 강조를 해도 ‘인간센서’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그 뉴스는 ‘뉴스룸을 위한 주요 뉴스’일 뿐이다. 더욱이 수많은 인간센서들은 뉴스에 대한 평가와 의견을 수없이 쏟아 놓는다. 그것도 순식간에. 뉴스룸의 데스크들이 “트위터는 이해할 수가 없다” “트위터는 위험하다”는 등 우려를 나타내는 경우의 대부분은 뉴스룸의 소위 ‘편집방향’이 ‘인간센서’들의 관심사와 괴리를 보일 때다.
이제 밥상을 다시 차리자. 홍동백서로 미리 정해진 자리에 음식을 차리는 제사상 방식을 버리고, 아무런 순서도 없고 담는 그릇의 차이도 없는 뷔페식단을 차려보자. 손을 많이 타는 음식이 특종이고 주요 뉴스다. 그 밥상이 바로 소셜 네트워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