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서 벗어난 '표현의 자유' 논란

[언론다시보기]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장관


   
 
  ▲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장관  
 
박경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위) 심의위원의 블로그 사진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박 위원은 방통위 심의에서 ‘음란물’로 판정받고 삭제된 성기 사진을 ‘이 사진을 보면 성적으로 자극 받거나 흥분되나요?’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올렸다가 “청소년이나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며 스스로 삭제했다.

그러나 갈수록 파문이 커지자 이번에는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사진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올리며 “이 작품이 성기 사진과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보수 언론들은 본질을 벗어난 비판 기사를 마구 쏟아냈다. 미국 국적을 가진 박 위원이 한국 사회의 이슈에 대해 시비를 걸 권리가 있는지 따지는가 하면 심의위원이 직무 관계로 취득한 자료를 공개한 데다가 자신이 반대했던 사안이라도 다수가 결정하면 승복해야 하는 원칙을 위반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의 진보단체 관련 경력과 함께 그를 추천한 민주당에 대해서도 간접적인 공격을 하고 있다.

그 기세에 힘입어 보수 단체들은 지난달 30일 ‘방통위는 박경신 심의위원을 즉각 제명시켜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그의 제명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번 문제의 본질은 박 위원이 미국인인지 아닌지, 심의위원이 심의 관련 자료를 노출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화가의 성기 그림은 괜찮고 개인의 성기 사진은 안 되는지, 그의 도덕성이 제명 대상인지 아닌지, 그가 좌익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표현의 자유 규제범위
문제의 본질은 한 개인이 자신의 성기 사진을 자신의 사적인 사이버 공간에 올리는 것을 허용해야 하느냐 규제해야 하느냐 하는 ‘표현의 자유의 규제 범위’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그동안 ‘외설’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수많은 사건들과 함께 우리 사회를 달궈 온 민감한 논쟁거리지만 특히 현 정부 들어 축소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다.

박 위원은 “국가기관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점을 비판하는 것은 심의위원의 직무”라며 “사회적으로 좋고 나쁜 표현을 걸러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그와 같은 주장은 그동안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사회적 관습을 무기 삼아 규제와 제한을 주장하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은 지지를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박 위원의 이상주의적 주장은 아직도 규제의 벽이 높은 우리 사회에 치열한 논쟁거리를 제공해 줄 중요한 이슈이다.

그런 논쟁은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해 매우 바람직하고 긍정적이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그런 논쟁을 촉발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성기사진 논쟁 아닌 논란으로 변질
그런데 아쉽게도 그가 소재로 삼은 성기 사진 때문에 ‘논쟁’이 아닌 ‘논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가 심의위원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본질을 벗어난 논란이 일지 않았을 것이다.

방통위의 심의위원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한 성기 사진을 올린 그의 행위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기능보다 심의위원 개인의 도덕성, 권한, 책임에 관한 논란을 일으키는 기능을 할 것이고 현재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박 위원 자신도 원하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진정 표현의 자유를 위한 논쟁을 확대시키고 싶다면 성기 사진 게재 보다 더 본질적인 논쟁의 이슈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를 비판하는 쪽에서도 본말이 전도된 개인에 대한 시비걸기를 그치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마도 그의 비판 세력은 그가 계속 성기 사진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려주길 기대하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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