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컨트롤타워에 대한 의문

[언론다시보기]김보라미 변호사


   
 
  ▲ 김보라미 변호사  
 
엘지텔레콤에서 2006년 파격적인 ‘기분존 서비스’(집에서 거는 이동통신전화비가 유선전화비보다 저렴했던 서비스)를 제공하였을 때, 케이티는 엘지텔레콤과 같은 이동통신회사에서 “유선전화보다 낮은 요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유선시장이 망한다”며 지금 돌이켜보면 희한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케이티가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에 이러한 낮은 요금의 상품을 출시한 엘지텔레콤에 시정조치를 해 줄 것을 요청한 뉴스를 보면서 회사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제기지만 해프닝 같은 문제제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당혹스럽게도 정보통신부는 케이티의 문제제기 그대로 엘지텔레콤에 기분존 서비스가 유선전화보다 저가인 것을 문제삼아 시정조치를 내렸으며, 이쯤되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법도 했던 엘지텔레콤은 이 희한한 정보통신부의 이상한 규제를 군소리없이 수용하기까지 하였다.

당시 이러한 현상은 규제와 진흥을 한몸에 가지고 있던 정보통신부가 유효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독점사업자와 밀착되고, 사업자들은 정보통신부의 보복이 두려워 불합리한 규제도 거부할 수 없는 현상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미국의 FCC(연방통신위원회)의 규제의 경우 사업자들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법치주의라는 합리적인 규제틀을 만들어 왔던 것과 대조적으로, 정보통신부는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먼 행정편의적, 독점사업자지향적인 규제원리들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해왔다.

소비자 무시한 행정편의적 규제들
그동안 우리의 독과점적 통신사들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맞추어 주지 않더라도 정보통신부의 이러한 우산규제로 거대이윤을 보장받는 안락한 규제생태계에서 살고 있었다. 2006년 중학생 아이가 한 달에 300만원 가까이 나온 데이터요금으로 자살한 충격적 사건이 터진 이후에도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통신사들은 여전히 기형적인 무선데이터요금제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정부의 IT 주무부처와 유착된 독과점기업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소비자의 선호와는 무관한 그들만의 룰이 있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 정보통신부는 해체됐고 규제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로, 진흥기능은 각종 행정부처로 쪼개어 나뉘게 되었다. 담달폰으로 불렸던 아이폰도 우리 시장에 도입되어 우리 소비자들은 앱스토어가 무엇인지, 소비자 지향적인 서비스가 무엇인지, 무선데이터서비스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현재 규제의 틀로는 정의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는 다양한 서비스들도 속속 드러났다. 아이폰상의 유튜브 서비스 문제로 촉발된 인터넷 실명제, 서울버스앱사건으로 촉발된 위치정보법, 그리고 금융사 공인인증서 문제까지 굳이 어려운 말을 하지 않아도 기존 규제들의 문제점들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이론이 아닌 실생활로 컨버전스가 무엇이고, 구산업시대의 법과 과잉규제가 무엇이며, 디지털 라이프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의 놀라운 혁신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과 세상의 변화 앞에서, 일각에서는 우리도 애플사의 아이폰과 같은 혁신을 누릴 수 있기 위하여 뭔가 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과거의 정통부 유사기구 신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모양 같다.

심지어는 국가가 한국형 OS를 만들겠다는, 또는 한국형 망중립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한국형 논의가 넘실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토록 부러워하는 아이폰 같은 파괴적 혁신은 국가의 진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과거 우리의 IT 발전은 정보통신부 때문에 가능했던 것도 아니었다.

IT컨트롤타워 정책 변화 필요
미국의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의 비즈니스모델의 변화는 국가가 아닌 경쟁이 혁신을 가능케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버라이즌은 음성매출과 데이터매출의 둔화와 극심한 경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단말기 제조업자와 VoIP(인터넷전화)업체들과 제휴를 하고, 굳이 국가의 규제나 진흥 없이도 4G 네트워크 구축을 서둘러 왔다.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근본적으로 미디어라는 측면에서 접점이 있는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고, 더 이상 ‘한국형’ 시장 계획으로는 방향을 잡을 수 없는 혁신과 변화의 시대 앞에 고민 없이 상명하복 방식의 IT컨트롤타워의 논의를 꺼내는 것은 아직도 사회가 수평한 네트워크와 버텀업 방식의 논의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IT컨트롤타워에 대한 논의는 짙은 정치적인 색깔로 문제가 많은 현재의 방송통신위원회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서비스들을 독과점업체들의 장벽 없이 접하고, 좀 더 수평한 형태의 다종다양한 네트워크의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책철학의 변화가 아닐까?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