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돋는 데자뷔, 파업 도미노

[언론다시보기]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


   
 
  ▲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  
 
동아일보, 한국일보, KBS, MBC.
1992년 당시 중앙일보 노조위원장이던 필자가 파업연대 지원 연설을 갔던 곳이다. 주로 조합 집행부 및 윤전, 공무 쪽 조합원들과 함께 현장에 갔다.

동아가 먼저였던 것 같다. 동아 신사옥 자리에 있던 신문발송 주차장에서 노조원(위원장 김광원)들을 향해 연설했다. 며칠 후 한국일보 노조(위원장 남영진)에서 연락이 왔다. 4.5톤 트럭 짐칸에 올라 연설했다. 이어 KBS(위원장 마권수), MBC(위원장 김종국)로 이어졌다.

그 중 MBC 여의도 본사 1층에 운집한 노조원들을 향해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당시 MBC는 최창봉 사장 퇴진과 손석희 아나운서 등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무려 52일 동안 파업했다. 그 시절 언론사 파업 쟁점은 공히 편집권 독립, 공정방송 쟁취였다.

그리고 20개 성상(星霜)이 지난 2012년 봄.
우리는 또다시 언론사 파업 도미노를 목도하고 있다. 20년 전에야 언론자유, 민주언론에 대한 사주, 사장들의 개념이 일천했던 터이니 그렇다 치자. 21세기 하고도 무려 12년이 지난 오늘의 파업 도미노는 도대체 무얼 뜻하는가. 역시 사장들의 언론자유, 민주언론에 대한 무개념 때문이다. 소름끼치는 데자뷔(Deja-vu)!

파업 언론사를 차례대로 살펴보자. 먼저 곧 파업 80일째를 맞을 국민일보. 초대 사장 조용우(조용기 목사 동생)를 비롯해 조희준(큰 아들), 노승숙(사돈)에 이어 현 조사무엘민제(둘째 아들)에 이르기까지 회사를 거쳐 간 사장의 면면만 봐도 조용기 목사 가족의 족벌경영이 주를 이뤄왔다.

특히 큰아들 희준씨는 200여 억원을 조세포탈·횡령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고 추가 혐의에 대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사무엘민제 현 사장 역시 각종 횡령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노조위원장을 해고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한 미국시민권자로서 사장 자격 논란까지 일으켰다. 국민 노조가 “편집권 쟁취”를 외치며 파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태생적 이유다.

다음 부산일보. 역시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며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투쟁 중인 부산일보 사태의 모든 귀책사유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게 있다. 스스로 “부산일보와 아무 연관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지만 그게 가당키나 한 얘긴가! 5·16쿠데타 후 부친 박정희가 김지태씨로부터 강탈한 정수장학회의 실소유주이면서 부산일보 구성원의 요구에 오불관언인 그가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라는 사실이 슬프다.

방송사 중 가장 먼저 총파업에 들어간 MBC는 ‘정권 나팔수’ 김재철 사장의 퇴출이 목표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 사장 부임 후 MBC가 철저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구성원으로부터 매도당하는 인사를 중용하는가 하면 건전한 비판 프로그램은 폐지됐고, 뉴스는 볼 게 없다.

급기야 사장은 근무처를 이탈하고 특급 호텔을 전전했다. 시니어 기자까지 제작 거부에 들어간 가운데 정작 해고돼야 할 사장이 기자회장과 노조 간부를 해고하는 악수를 뒀다.

KBS는 또 어떤가. 새노조는 MB언론특보 출신 사장의 노조 간부 부당징계와 부적절한 인물의 보도본부장 보임을 이유로 사장 퇴진 운동을 벌이던 중 어제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보도전문채널 YTN과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는 각각 해직자 복직 거부, 불공정 보도 책임 사장의 연임 반대를 쟁점으로 파업 대오를 정비하고 있다.

다시 20년 전을 돌아본다. 당시 언론사 파업 도미노는 편집권 독립·공정방송 쟁취였다. 그런데 2012년 시점의 언론사 노조 파업 쟁점 역시 편집권 보장과 방송 공정성 회복이다.

그간 l인당 국민총소득(GNI)은 두 배 넘게 늘어났고, 대한민국을 부러워하는 나라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정작 한국 언론의 자유도는 후퇴했고, 서글픈 데자뷔는 반복되고 있다.
파업이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으니 파업 대오에 나서는 것 아닌가.

동지들이여 쫄지 말지어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대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터이니. 그리고 뒤에 선 이들도 조만간 그대들 대오에 동참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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