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뉴욕
[스페셜리스트│IT]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산업부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6.20 15: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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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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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뉴욕에 들렀을 때 ‘뉴욕테크밋업’(NYTM)이란 행사에 갔다. 뉴욕이 실리콘밸리에 이어 ‘제2의 실리콘밸리’로 떠오른다는 얘길 듣고 이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 뉴욕은 실제로 제2의 실리콘밸리가 됐다.
뉴욕 출신 기업들의 이름을 대보자. 포스퀘어, 엣시, 길트, 텀블러…. 모두 최근 5년 사이에 뜬 기업들이다. 2008년에는 미국 전체 기술기업 투자액 가운데 7%만 뉴욕 소재 기업에 투자됐다. 하지만 이 수치는 2011년 10%로 껑충 뛰었다. 물론 세계 최대의 ‘벤처 천국’인 실리콘밸리는 약 40%의 투자를 독식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뉴욕이 제2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데 모자람이 없다.
뉴욕의 벤처기업들은 실리콘밸리 기업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포스퀘어는 스마트폰 위치정보를 이용해 주변의 식당이나 카페, 가볼 만한 장소를 보여준다. 엣시는 예쁜 수공예품 판매를 중개한다. 손으로 직접 만든 의자, 원피스, 목걸이 등이 팔린다. 길트는 명품 의류 할인 판매, 텀블러는 트위터보다 길고 블로그보다는 짧은 글을 올리는 1인 미디어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과 카페, 패션 쇼핑몰과 미디어회사가 몰려 있는 뉴욕의 특성이 드러난다.
하지만 뉴욕은 사실 벤처기업에 어울리는 도시가 아니다. 집값부터 인건비, 하다 못해 사무실 냉장고를 채워 넣을 음료수 값까지 모든 게 비싸다. 벤처기업을 지탱하는 힘인 뛰어난 엔지니어 숫자는 실리콘밸리의 10분의 1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뉴욕은 성공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라면 어떨까?
서울은 아시아의 뉴욕이다. 인구밀도가 높아 도시 전역에 세계 최고 수준의 이동통신망이 깔려 있고 하루 평균 1000만 명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무엇보다 주변 국가 사람들이 선망하는 ‘한류’가 있고 아시아에서 보기 드물게 국내 영화산업이 번창했다. TV 드라마의 수준도 세계적이다. 한국 패션은 최근 아시아의 유행을 주도한다. 한국 음식도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뉴욕과 비교해 뒤지는 건 금융산업 정도다.
최근 문지원·호창성 부부를 만났다. 비키라는 회사를 창업한 사람들이다. 비키는 유튜브 같은 동영상 서비스로 세계 각국의 영화·드라마를 서비스한다. 특히 누리꾼의 자원봉사를 통해 이런 콘텐츠를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기 때문에 설립 이후 영국 BBC 방송국과 한국의 SK텔레콤을 비롯해 세계 각국 벤처캐피탈의 투자도 받았다.
이 부부가 최근 서울 논현동에 새 사무실을 냈다. 한국 음악과 스포츠, 연예인 등 한류 문화부터 시작해 세계 각국의 대중문화와 취미생활이 다뤄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SNS는 거품이란 얘기도 나오지만 ‘한류 SNS’는 좀 달랐다. 정식 서비스 전이고 딱히 알린 적도 없는데도 입소문만으로 세계에서 매일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서비스에 접속한다. 이들의 사무실에는 한류가 좋고 한국이 좋다며 찾아온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일하고 있었다.
NYTM에서 만난 뉴욕 벤처기업가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뉴욕에는 ‘진짜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는 약점이 있단 얘기였다. 실리콘밸리는 기술 기업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신기술에 익숙한 소비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얼리어답터 시장’이란 얘기다. 반면 뉴욕에서 성공한다는 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성공이란 뜻이었다.
서울은 실리콘밸리가 아니다. 하지만 뉴욕처럼 될 수는 있다. 대중문화와 패션, 관광이 기술과 결합한다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미 비키 같은 작은 회사의 성공 사례만 보고도 서울로 몰리는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나올 정도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얼마나 더 큰 꿈을 꾸느냐의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