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독립 저널리즘을 꿈꾸며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휴일 오후 미뤄두고 처리 못한 일 한 가지가 떠올랐다. 메일함을 뒤져 찾아낸 것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설문조사. 우리 언론인들이 우리나라 언론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월간 ‘신문과 방송’ 500호 특별기획이다. 그러나 현재 소속과 직책, 직위 등을 입력하고 나니 해당부문은 이미 응답자가 넘쳐 닫혀 있었다. 무엇을 찾기 위해 어떤 질문들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기자협회 기고문을 쓰려던 계획도 무산되었다. 언론인이 바라보는 언론인 이야기…. 미국에서는 저널리즘의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 안에 이런 내용을 포함한 적이 있다.

1997년 6월이니 15년 전 이때쯤이다.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에 관해 토론을 벌인 당시 참석자들은 먼저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리고 기자들이 써내는 기사 중에 저널리즘이라고 인정하고 싶은 기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그 결과 사회의 발전과 공공의 이익에 언론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도 공유했다.

그들의 두려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드러났다. 2년 뒤인 1999년에 실시한 ‘경영압박과 수용자 관심, 그리고 저널리스트의 가치의 균형’에 관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21%만이 ‘언론이 시민을 위해 일한다’에 동의했다. 1987년 조사에서는 41%이던 항목이다. ‘사회 속에서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견 역할을 존중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58%. 1985년에는 존중한다는 대답이 67%였다. ‘언론이 민주주의를 보호한다’는 응답은 45%로 절반을 넘지 못했다. 1985년 55%에 가까운 지지를 보였으나 10%포인트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뒤로 시민들의 이런 시선에 언론인들 대다수가 심각히 공감하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하고 있는 여론조사가 어떤 결과물을 쏟아낼지 알 수 없지만 이때 미국에서 드러난 흐름 및 우려의 내용과 유사하리라 예상한다. 우리는 미디어 시장이 거대해지지만 그 안에서 저널리즘은 위축되기만 하는 현실을 목격해오고 있다. 그런 사회의 흐름을 막을 길은 없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저널리즘을 건져 내고 소생술을 시도하는 일이 당연히 우리의 몫이다. 건져낼 저널리즘이 무엇일까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다 알고 있고 현장에서 모두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심폐소생술은 어떤 것들일까? 미국은 그 후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언론인 위원회’, ‘우수한 저널리즘을 위한 프로젝트’ 등이 시도돼 저널리즘의 회복을 꾀했다. 이런 과정에서 확인된 저널리즘의 원칙들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공정성’, ‘객관성’, ‘시대적 사명’…. 이런 화려하지만 모호한 수식어들을 떼어내고 다시 소박하게 정리해보자.

첫째 의무는 진실이다./ 사실 확인은 지켜야 할 본질이다./ 시민들에게 충성해야 한다./ 취재하는 대상에게 매이지 말고 독립하자/ 권력은 감시해야 한다./ 공공의 여론이 형성되도록 기여하자./ 시민들이 중요한 일을 중요하게 인식하도록 흥미롭게 전달하자./ 뉴스는 포괄적으로 보도하되 비중에 맞게 보도해야 한다./ 양심을 지켜라./ 시민들도 뉴스에 대해 권리와 책임이 있다.

위의 것들을 읽다 보면 아마 두 가지 물음이 떠오를 것이다. 1. 한국 사회에서 이런 독립 언론이 가능하기는 하나? 2. 독립 언론을 세운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겠나?

위의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저널리스트들이 독립 언론의 모습을 제시해야 하고, 가능성은 시민들이 독립 언론은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도에 비례할 것이다.

1953년부터 20년간 발행된 ‘1인 신문’이 있었다. 미국의 I F 스톤(I.F.Stone, 1989년 사망)이 발행한 ‘I F 스톤즈 위클리’라는 신문이다. 독립적인 언론인의 모델이고 정직한 블로거의 개척자인 그는 독립적인 언론인의 ‘모범’이자 정직한 블로거의 선구자로도 평가받는 인물이다. 혼자 취재하고 자신의 집에서 편집해 주간지를 찍어냈다. 우체국에서 신문발송도 직접 했다. 기자실, 기자단, 기자회견장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고위소식통을 두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특종이 많았고 분석도 뛰어났고 발행부수가 7만부나 되었다.

혼자 해낸 일을 수백 수천 명이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장 하나 잘못 만난 탓일까? 시대를 잘못 만나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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