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수익도 높다는 거짓말
[스페셜리스트│증권·금융] 고란 중앙일보 기자·경제부
고란 중앙일보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7.11 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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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 중앙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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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가 보상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괜히 변호사들이 자기들 돈 벌려고 소송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네요.”
4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예금보다 더 높은 금리를 주는데 예금만큼 안전하다고 팔린 A펀드가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예금만큼 안전하다’던 A펀드는 원금의 80% 이상을 날리게 됐다. 시간이 지난다고 손실 규모가 줄어드는 상품도 아니었다. 구조상 시간이 지나면 원금 전체를 까먹는 파생형 펀드였다. 이런 펀드를 안전하다고 팔았던 은행에 분개한 이들이 인터넷 카페를 조직했다. 집단소송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 카페 회원 중 한 명과 통화했다. 아버지 사망 보험금으로 받은 돈 1억원을 어머니가 A펀드에 투자했다고 한다. 은행 직원의 ‘안전한 고금리 상품’이라는 말만 믿고 어머니는 조금 특이한 예금인 줄 알았단다. 원금을 까먹을 수 있는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돈을 날리게 생겼으니 지금 어머니가 몸져누웠다며 흥분했다. 은행이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에게 그런 상품을 팔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정을 설명하고 나서 마지막에 그가 물었다. 소송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고.
나의 답은 부정적이었다. 한쪽은 자산 규모가 수조원에 이르는 은행이고, 한쪽은 투자액이 1억원에 불과한 개인이다. 은행은 ‘투자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는 계약서에 투자자 서명을 받아뒀다. 몰랐건, 알았건 상관없이 그의 어머니가 자필로 서명을 한 이상 이 문서를 법정에서 증거로 들이미는 은행에 책임을 물리기는 어려워 보였다.
아들은 “어머니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다”며 “소송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은행이 손실금의 50%를 배상하라고 조정 판결했다. 위험한 상품에 대해 충분한 고지가 없이 판매한, 곧 불완전 판매라는 이유였다. 다만 투자신탁상품 가입고객 확인서에 서명 날인했고, 거래 통장에 ‘펀드종류:파생상품형’이라고 씌어 있음을 인정해 은행 책임을 절반만 인정했다.
처음이었다. 펀드의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판매사 측에 투자 손실 금액의 일부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그는 끝까지 싸워 투자자의 권리를 찾은 셈이다.
이후에는 금융권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가 종종 나왔다. 얼마 전에는 파생형 펀드뿐만 아니라 일반 주식형 펀드에 대해서도 판매사 측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도 나왔다.
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보상 판결이 투자자 보호 쪽으로 많이 기울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들여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가입고객 확인서에 서명한 이상 은행에 100% 책임을 물리기도 어렵다.
사람들이 펀드에 가입하는 가장 큰 통로는 은행(혹은 증권사) 창구 직원의 권유를 받고서다. 문제는 은행 직원들이 투자자의 상황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펀드를 추천한다기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도움되는 상품 위주로 판다는 점이다. 인센티브나 고과에 도움되는 계열 운용사 펀드 팔아주기가 대표적이다. 미래에셋증권ㆍ신한은행 등 펀드 판매 상위 10곳의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은 올 4월 말 기준으로 46%에 달했다. 그나마 2010년 말에 비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높다. 특히 최대 지점수를 자랑하는 KB국민은행의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은 2010년 말 46%에서 올 4월 말에는 55%로 높아졌다.
우유 하나 살 때도 칼슘 성분을 계산하고 지방 함량을 고려하며 칼로리를 따진다. 그런데 우유의 수백 배 돈이 들어가는 펀드에 가입할 때는 창구 직원의 말만 듣고 가입한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손실이 나면 배상을 받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나마 손실액 전체를 보상받지도 못한다. 애초에 가입할 때 그 백 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과 노력만 들였더라도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안전하고 수익률이 높은 상품은 없다. 수익률이 높으면 위험하고, 안전한 만큼 수익률은 낮다. 은행에서 ‘예금과 비슷하다’고 권하면서 수익률이 높다면 그 상품은 뭔가 위험하다.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나중에 후회 말고 가입할 때부터 꼼꼼히 따지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