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진요'가 오염시킨 인터넷 정신

[언론다시보기] 주정민 전남대 교수


   
 
  ▲ 주정민 전남대 교수  
 
가수 타블로의 스탠퍼드대학의 졸업에 의혹을 제기한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렸다. 타블로 본인은 물론 스탠퍼드대학이 직접 나서서 졸업사실을 확인했고 검찰과 외교부 등 국가기관이 나서서 170개의 증거목록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끝까지 타블로의 학력이 위조되었다고 주장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은 1심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상고했다. 이들은 타블로와 재판부가 어떤 증거를 내놓아도 믿지 않을 분위기이다.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타진요’를 옹호하는 누리꾼의 글이 쇄도하고 있고, 또 다른 제2의 ‘타진요’ 사이트도 등장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군중심리를 등에 업고 유명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비열한 행위라는 비판도 빗발치고 있다. 일부 언론은 ‘타진요’의 행동을 의혹제기 차원을 넘어 병적인 집착수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타진요’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에서는 진실추구라는 명분하에 무수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그 결과 개인과 집단이 선의의 피해를 본 다수의 사례가 존재한다. 인터넷의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괴소문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고 자살한 경우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고 자기의 주장을 펼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인터넷은 출범초기부터 기존 매체와는 달리 탈중심적인 개방 공간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고 정보를 생산하여 유통할 수 있으며 다양한 관점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인터넷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 상징이었던 ‘아고라’를 사이버 공간에서 구현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개인들은 인터넷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일찍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존 밀턴’은 특정 이슈에 대해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의 기회를 제공하면 자연스러운 정제과정을 거쳐 진리가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의견제시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진리가 묻혀 발견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고 설파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여론의 공개시장에서 합리적인 논의과정을 거쳐 최선의 의견도출과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에서 제기되는 여러 이슈들은 ‘타진요’의 사례처럼 진리가 무엇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 진리가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진리를 부정하며 새로운 논쟁거리를 만들어내는 ‘다람쥐 쳇바퀴’식의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일방적인 논의공간에 합리적인 주장과 논쟁은 끼어들 틈이 없다.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면박’과 ‘욕설’로 논의 자체를 차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학적 논거에 기초한 논쟁,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진리추구는 설자리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안타깝게도 인터넷이 자율적인 정화기능을 상실하면서 타율적인 다양한 규제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스스로 질서를 지킬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하면서 정보 통제자가 ‘불법’과 ‘허위’를 가려내는 제도가 합법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인터넷의 기본질서 유지를 위해 적용하는 명예훼손, 허위사실 공표와 같은 기본적인 규제를 넘어 문제가 되는 정보와 서비스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누리꾼이 좀 더 이성적이지 않으면 자유공간에 대한 규제의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

무수한 설전이 오가며 논리적인 투쟁을 통해 진리가 무엇인지 가려지는 ‘사이버 아고라’의 구현은 이상적인 꿈일까.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괴담을 만들고 억지를 부리는 누리꾼이 설자리를 잃도록 한다면 가능할 일일지도 모른다. 허위와 거짓에 대해 과감하게 잘못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있는 다수의 누리꾼이 존재한다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이버 공간의 오염을 되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의 기본 정신인 ‘개방’, ‘자유’, ‘공유’의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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