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모형과 달러貨
[스페셜리스트│외교·통일] 이하원 조선일보 기자·외교안보팀장
이하원 조선일보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7.18 16: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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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원 조선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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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의 전문대학원 중에서 쌍 벽을 이루는 두 개의 학교가 경영대학원과 행정대학원(케네디 스쿨)이다. 찰스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두 대학원은 학생 구성과 설립이념이 판이하다.
경영대학원에는 주로 대기업, 컨설팅 회사, 은행 등 민간기업 출신이 모여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에 주로 관심을 기울인다. 이에 비해 행정대학원은 공무원, 군,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주축이어서 공익(公益) 개념으로 세상을 해석하려 한다.
두 대학원의 학생들은 가끔씩 찰스강 너머를 지칭하며 “현실적이지 못하다”, “돈 밖에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
두 대학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2003년 6월 5일 하버드대의 졸업식장이다. 로렌스 서머스 당시 총장이 주재하는 졸업식에서 경영대학원이 호명되자 이 대학원의 졸업생들이 손을 높이 올려 공중에 흔든 것은 달러화(貨)였다. 순간 졸업식장에는 웃음과 함께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어서 행정대학원의 졸업생들은 지구 모형의 파란색 비닐 공을 들어 보였다. 공익을 추구하며 지구촌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자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돈과 지구모형이 순차적으로 하늘을 덮은 모습은 이날 졸업식의 상징적인 광경으로 남았다.
2008년부터 시작된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역설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지구모형으로 상징되는 공익의 중요성이다. 신(新) 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경제는 졸업식장에서 거리낌 없이 돈을 꺼내 흔들 정도로 자본의 자기증식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증권사를 지키는 비정규직 경비원들이 저임금에 시달리는 동안 펀드 매니저들이 수백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은 당연시됐다. 일반 근로자와 CEO 간의 임금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져왔다. 돈이 돈을 낳는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엉터리 장부가 만들어지는 것도 예사였다. 이런 과정이 반복된 끝에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은 무한 질주하는 자본의 증식을 적절하게 제어하기 위해 공익분야가 나서야 함을 일깨워준다. 공무원이 적절한 세금과 규제로 기업의 본능적인 탐욕(貪欲)을 제어하고 시민단체가 제대로 된 감시를 할 때에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초대형 경제위기에서 새삼스럽게 확인되는 이 진리는 혼돈을 겪고 있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의도 국회와 각 지방자치단체 의회, 시민단체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때에야 외환위기 당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현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경기 부양책을 만들기 위한 정부 자금 지출 방향을 결정하고 돈만 보고 달려가는 기업을 견제하는 것은 공익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공익과 행정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케이스다. 그는 워싱턴 DC의 K스트리트나 뉴욕의 월스트리트로 진출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시카고 지역사회 자원봉사자로 출발, 정치의 길을 택했다.
한국에도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오바마 대통령처럼 공익분야로 달려가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국제적인 감각과 개혁성을 갖춘 젊은이들이 경제계뿐만 아니라 정계에서, 정부에서,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때 위기를 최소화하고 건강한 자본의 증식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