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카카오스토리' '라인'을 위하여

[스페셜리스트│IT]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산업부


   
 
  ▲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구글은 대단한 회사다. 세계 최대의 검색 업체로 모바일 시장도 애플과 함께 양분한다. 온갖 놀라운 신기술을 하루가 멀다 하고 선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사람들은 구글 검색은 열심히 쓰지만 구글의 다른 제품들은 영 쓰질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구글 제품들은 혁신적이긴한데 좀 지나치게 앞서 간다. 구글이 야심차게 만든 ‘크롬북’이란 노트북은 컴퓨터는 컴퓨터인데 전원을 켜면 달랑 웹브라우저 하나만 나온다. 모든 걸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시대이니 인터넷만 되면 된다는 논리지만 결국 이 노트북은 구글 직원들 외에는 쓰는 사람이 없다. 구글이 만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구글 플러스’는 다양한 신기술을 잔뜩 담았지만 사용자는 엔지니어와 구글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구글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은 IT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다. 즉 구글 같은 회사의 시대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은 급격한 변화를 싫어한다는 점이다. 점진적인 개선은 좋지만 혁명이 매일 일어나는 세상에선 누구나 지치게 마련이다. 웹 브라우저만 있는 컴퓨터라거나 10명 동시 화상 채팅이 가능한 SNS를 새로 배우는 건 사실 누군가에겐 노동에 가깝다.

최근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서비스들은 이런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스며든 서비스다. 몇 달 전 해외에서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이란 모바일 서비스 벤처기업을 우리 돈으로 1조원이 넘는 값에 인수했다는 소식을 기억하는가. 하지만 ‘한국의 인스타그램’은 낯설 것이다. 카카오톡으로 유명한 카카오가 만든 ‘카카오스토리’ 얘기다. 이 서비스는 30대 주부들이 아이 사진을 나누는 용도로 쓰기 시작하면서 사용자가 1000만명이 넘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이라곤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일본에선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이 만든 ‘라인’이 1위 메신저 서비스가 됐다. 동남아로 인기가 늘기 시작하더니 가입자도 어느새 5500만명에 이른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대박이 났다. 연말이면 1억명을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에선 트위터보다 더 인기를 끌 기세다.

한국의 인스타그램, 한국의 트위터 같은 이런 서비스의 특징은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보다 뭔가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기능도 적고 서비스도 단순하다. 하지만 기술 부족 때문에 이렇게 만든 게 아니다. 카카오와 NHN 사람들의 공통적인 대답은 “일부러 기능을 뺐다”는 것이었다. 마치 버튼이 많이 달린 TV 리모컨 대신 사람들이 꼭 쓰는 전원과 채널, 음량 조절 버튼 정도만 남긴 리모컨을 연상시켰다.

일본에서는 라인이 성공하자 ‘SNS 난민 이론’이라는 게 유행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처럼 복잡한 SNS를 배우려니 골치 아파하던 사람들이 SNS 난민이 됐고, 이들이 쉽게 쓸 수 있는 라인을 통해 스마트폰을 이용한 SNS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한국 서비스들은 앞서가는 사용자를 찾는 대신 혁명의 시대에 뒤처진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돌아봤다. 구글이 만드는 것 같은 천재들의 혁신적 서비스는 아니었는지 몰라도 무엇보다 ‘따뜻한 서비스’였던 셈이다.

한국은 소프트웨어는 별로고 기계나 잘 만든다는 자괴적인 얘기가 한 때 우리 주위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지금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는 한국의 환경과도 관계가 깊어 보인다. 좁은 땅에서 수천만 명의 사용자들과 지지고 볶으며 쌓은 한국 인터넷 업체의 노하우는 독특한 자산이 됐고 시장을 남다른 시각으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 덕분에 처음으로 한국의 서비스들이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다. 제2, 제3의 카카오스토리, 라인 같은 서비스가 앞으로도 계속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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