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진실, 인간' 없는 국민일보
[언론다시보기]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9.05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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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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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사측이 기자들에 대한 대량 해고의 칼을 뽑아 들었다. 국민은 지난달 29일 인사위원회 재심에서 권고사직(사실상 해고) 2명, 정직 6명, 감봉 4명, 감급 1명 등 모두 13명에게 징계를 내렸다. 2008년 YTN 무더기해고 사태 이후 언론사 해고 및 징계론 최대 사건이다.
이번에 해고된 황일송, 함태경 두 기자의 죄목(?)은 각각 ‘해사행위’와 ‘사익추구’다. 그런데 황 기자에게 씌워진 그 해사행위란 죄목이 황당하기 짝이 없다. 황 기자가 미국 시민권자로 신문사 대표가 될 수 없는 조사무엘민제 당시 사장(현 국민일보 회장)이 신문법을 위반했으니 조치를 취하라고 서울시에 제보한 데 이어, 영등포세무서엔 국민문화재단(국민일보의 지주법인)이 공익법인이 아니니 세금을 물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노조의 설명과 사뭇 다르다. 황 기자는 파업 초기 전국언론노동조합 국민일보 지부 쟁의부장 자격으로 ‘외국인 신분으로 언론사 대표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유권해석을 담당관청인 서울시에 요청했고, 회사를 관할하고 있는 영등포세무서엔 ‘국민문화재단의 정확한 성격이 무엇인지’에 관해 문의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자사 기자가 해사행위를 저질렀을 리 없고 뚜렷한 증거도 없다.
사익추구를 이유로 해고된 함태경 기자의 경우는 더 그렇다. 파업 기간 동안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주변에 후원을 요청했다는 거다. 파업은 쟁의로 정상적인 근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반년 가까이 무노동 무임금으로 버텨온 조합원들로선 거리에 나가 행상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자신의 전문지식을 토대로 책을 집필한다는 건 권장할지언정 회사를 내쫓을 사안은 결코 아니다.
1차 인사위(8월 20일)에서 해고(권고사직 통보)됐다 3개월 정직으로 징벌이 가벼워진 이제훈, 황세원 기자를 비롯한 나머지 11명의 죄목은 ‘경영진 비방과 회사명예 실추’다. 기자들이 트위터 등 SNS와 외부 매체 기고를 통해 회사 망신을 시켰다는 거다.
그런 논리라면 파업을 벌이는 이 땅의 노동자들은 모두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 파업 구호에서 경영진 이름이 부정적으로 거론되는 건 자연스런 현상 아닌가!
1988년 12월 10일 창간한 국민일보는 사반세기 동안 ‘복음 실은 종합일간지’를 캐치프레이즈로 개신교 문서 선교지와 정론 일간지로서의 사명을 꿋꿋이 지켜왔다. 특히 학자들의 만연한 논문 표절 관행을 이슈화하는 등 수다한 특종으로 메이저 페이퍼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 저변엔 박봉을 마다치 않고 정론직필을 치열하게 지켜온 기자들의 투혼이 깔려 있다.
이처럼 업고 다녀도 성에 차지 않을 기자들을 경영진이 마구잡이로 내동댕이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건 국민일보 사주 일가에게 있다.
창간 당시 업계 최고의 대우와 최고의 시설을 목표로 출발한 국민일보엔 천문학적 규모의 연보돈이 여의도순복음교회로부터 유입됐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 족벌들이 집안싸움에 몰두하더니 작년엔 노조에 의해 2000년 퇴출됐던 장남 희준씨가 재입성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형제의 난’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한민국과 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신성한 신문사에서 말이다.
사주와 경영진은 회사를 망가트리고 머슴들은 기울어가는 회사를 살리려고 분투하는 기묘한 구도. 그 속에서 남발되는 ‘해고와 징계.’ 봉숭아 학당도 이보다는 나을 거다.
국민일보의 사시(社是)는 ‘사랑’, ‘진실’, ‘인간’이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그곳엔 지금 ‘사랑’이 없고, ‘진실(성)’이 없고, ‘인간(성)’도 없다. 대신 충심(衷心)으로 회사를 지키려는 머슴들의 긴 한숨 소리만 그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