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 홍수 일본, 성범죄율 낮은 이유

[언론다시보기] 주정민 전남대 교수


   
 
  ▲ 주정민 전남대 교수  
 
우리 사회에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범행의 주요 동기나 모방 기제로 미디어를 지목하고 있다. 끔직한 성범죄였던 ‘고종석 사건’에서도 미디어를 통한 음란물 유통이 논란거리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가 선정적인 내용을 제공하여 성범죄를 부추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미디어가 성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미디어의 선정적인 내용이 성적 호기심과 충동을 야기한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성범죄와의 관련성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결과를 제시하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성적인 대리만족을 줘 정화작용을 한다고 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외설과 포르노에 대한 전국위원회’, ‘미즈위원회’ 등과 같은 조직을 만들어 미디어와 성범죄 간의 관계를 대대적으로 조사한 적도 있다. 미디어의 선정적 내용이 성범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들 위원회는 “미디어의 선정적 내용과 성범죄와의 인과관계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하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우리 사회는 미디어의 선정적 내용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야기한다는 데에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미디어를 통해 선정적이고 음란한 내용이 유포되는 것에 대해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 그 중에서 공개성이 강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방송매체나 신문 등은 남녀의 미세한 신체노출과 접촉조차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미디어를 통한 선정적 내용의 유통을 엄격히 규제하면서도 또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는 선정적 콘텐츠가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다. 인터넷의 경우 공개적인 사이트에서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는 노출될 수 없는 선정적인 이미지가 자유롭게 노출되고 있다. 인터넷 게임에서 자극적인 이미지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한편에서는 미디어의 선정적 콘텐츠 유통을 틀어막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롭게 유통되는 엇박자 문화가 존재한다. 

미디어의 선정적 내용에 대해 규제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콘텐츠가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성범죄와 같은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전제가 함께 깔려 있다. 그렇다면 성범죄 예방 효과를 얻기 위해서 최소한 일관되고 체계적인 규제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주목할 만한 사실은 미디어에 대한 규제만으로 음란물의 유통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성범죄를 유발하는 경로와 동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보다 심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미디어 이외에 성범죄를 야기하는 다른 사회문화적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웃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훨씬 미디어를 통해 선정적인 내용이 자유롭게 유통되고 누구나 음란물을 접할 수 있지만 성범죄율이 아주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연구한 학자들은 일본인들은 사회적 도덕성을 강조하고, 사회적 규범을 침해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매도당하는 분위기가 작용하는 결과로 보고 있다.

일본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성범죄의 주요 원인으로 미디어뿐만 아니라 개인과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미디어 내용을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 문제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이를 통한 건전한 사회문화 형성이 더 중요하다. 성에 관한 문제는 규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개인의 특수한 심리적 상황과 사회문화적인 현상과 함께 존재한다.

미디어가 성범죄를 선정적이고 상세하게 보도해서인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예전보다 훨씬 많은 성범죄가 발생하고 그 형태도 다양하고 폭력적이다. 그러나 성범죄의 원인을 단순히 미디어에 돌리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그런 범죄를 양산하게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성범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미디어 및 사회문화적 환경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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