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과 일자리의 급소는 재벌개혁

[스페셜리스트│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경제학 박사


   
 
  ▲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대한민국대통합위원장을 직접 맡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일자리혁명위원장을 맡았다. 대선후보가 직접 나선 것은 그 자리가 이번 대선에서 그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직접 특정 자리를 맡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권하면 대통령 직속의 ‘재벌개혁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대통합과 일자리, 재벌개혁은 모두 중요한 과제들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급소는 무엇일까?

우리 시대의 국민대통합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양극화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해야 진정한 대통합이 가능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경제민주화의 핵심과제는 재벌개혁이다. 재벌이 경제민주화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대통합은 사람 몇 명 영입해 손을 맞잡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뜻이라 할 수 있다.

일자리도 시급하다. 양극화를 해소하는 지름길은 국민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존의 괜찮은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기존의 나쁜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바꾸는 것이고, 셋째는 괜찮은 일자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방법의 핵심에는 재벌문제가 놓여 있다. 재벌은 경기침체 조짐만 보이면 비상경영과 위기경영을 명분으로 내걸고 선제적으로 구조조정(감원)을 단행한다. 기존의 괜찮은 일자리를 줄이는 것이다.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재벌 대기업이 감원에 앞장서는 것은 사회책임보다 더 많은 이윤창출에만 혈안이 돼 있는 탐욕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재벌들은 비정규직을 광범위하게 활용한다. 재벌 대기업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20~30%는 비정규직이다.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임금을 받고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일자리를 잃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은 재벌체제가 경쟁력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이다. 재벌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대원칙에 동의한다면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순리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나쁜 일자리가 괜찮은 일자리로 바뀌게 된다. 현대차는 최근 7000~8000명의 사내하청 근로자 중에서 3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노동계는 그 정도로는 미흡하다고 반발하지만 다른 재벌 대기업들은 현대차 수준의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에 8조1000억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4분기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이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최근 5년간 2배로 증가하는 동안 고용유발계수(매출 10억원당 몇 명의 고용효과를 가져오는지 나타내는 수치)는 오히려 1.34명에서 0.84명으로 40% 가까이 줄었다. 회사가 성장한 만큼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 재벌의 ‘고용없는 성장’을 잘 보여준다. 만약 삼성전자의 고용유발계수가 지난 5년간 그대로 유지됐다면 최소 6만명 이상이 괜찮은 일자리를 얻었을 것이다.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면 재벌의 인식과 경영행태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도 재벌들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일자리 창출에 역행한다는 궤변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경제민주화를 맨 앞에 내세웠다. 하지만 새누리당 안에서는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문재인 후보는 재벌개혁을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은 노무현 정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후보수락 연설에서 새로운 시대로 가는 다섯 개의 문(門)을 제시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일자리와 복지의 뒤에 놓았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재벌개혁위원회 신설 공약으로 개혁의 급소를 눌렀다. 국민대통합이나 일자리 창출을 제대로 이루려면 재벌개혁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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