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자리 만들기'와 대선후보들의 자가당착
[스페셜리스트│IT]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산업부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10.24 1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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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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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의 시기다. 모두 정치 얘기를 한다. 그중에서도 첫째 화두는 ‘일자리’다. 주요 후보들 모두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다. 그것도 정보기술(IT)을 이용해서 혁신을 하고, 스마트한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그들이 진지하게 IT를 생각해 보기나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일자리와 기술은 애증의 관계다.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은 풍요와 함께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낸다. 하지만 급격한 기술 발전은 필연적으로 그 과정에서 변화에 뒤처지는 사람을 만들고 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
역사적으로 이런 시기가 몇 차례 있었다. 산업혁명기 영국에서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방직기가 방직공의 일자리를 대체했다. 방직공장이 만드는 일자리는 실업자가 된 방직공보다 훨씬 부족했다. 대공황을 마무리한 미국 기업들도 1930년대 초에는 직원을 거의 고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공황 때 값이 내려간 최신 기계를 사들여 부족한 노동력을 채웠다. 지금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우리 시대의 기술 발전 속도는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모든 기술 발전의 속도 가운데 최고다. 역사상 어느 때도 지금처럼 강력한 기계가 모든 산업에 걸쳐 파괴적인 혁신을 이끌어냈던 적은 없었다.
올해 초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 등이 참석했던 미국 대통령 직속의 과학기술위원회는 독일의 컴퓨터 과학자 마틴 그뢰첼의 연구를 인용해 1988년부터 2003년까지의 컴퓨터 기술 발전 속도를 소개했다. 이 시기 컴퓨터의 성능은 무려 4300만배 발전했다. 단 15년 동안. 공식 자료가 없어서 그렇지 사실상 세계의 컴퓨터가 하나로 연결된 최근 10년 동안의 컴퓨터 발전은 이 15년 동안의 발전을 뛰어넘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자 최근 들어 생각지 못했던 현상이 나타났다. 프로그래머나 금융공학자, 전문경영인 등 고급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수입은 계속 늘어났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기술과 임금의 관계가 우상승 곡선 대신 ‘U자 곡선’을 그린 것이다.
말하자면 최고급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계속 부를 누렸지만 대학 교육을 받았던 도서관 사서나 은행원 등은 일자리를 잃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반면 중학교만 나온 정원사나 미용사, 간병인의 소득은 소폭 늘어났다. 뛰어난 컴퓨터가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1997년 인간 가운데 최고의 체스 챔피언이었던 게리 카스파로프가 IBM이 만든 1000만 달러짜리 슈퍼컴퓨터 ‘딥 블루’에게 체스 시합에서 지는 일이 있었다. 그 뒤로 어떤 인간도 딥 블루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딥 블루도 계속 챔피언일 수는 없었다. 오늘날 지구상의 체스 챔피언은 바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인간’의 팀이다.
일자리와 IT의 관계란 이런 것이다. 딥 블루를 이기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딥 블루도 ‘인간과 팀을 짠 컴퓨터’는 이기지 못한다. 우리 시대에는 ‘헐값의 노동력’과 ‘기술 혁신으로 헐값이 된 기계’가 공존한다. 괴로운 게 아니다. 생각을 바꾸면 인간의 능력과 뛰어난 기계를 어느 때보다 값싸게 팀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다. 딥 블루를 이기는 세계 챔피언이 나오는 시대 말이다.
지금 대선주자들은 딥 블루를 만드는 사람들을 칭송하며 이런 기계를 더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딥 블루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대기업과 소수의 부자를 비난한다. 이번 대선 후보들은 제발 이런 자가당착은 그만두고 딥 블루를 이기는 챔피언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