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원 조선일보 외교안보팀장 | ||
양국이 어려울 때 서로 돕기로 한 7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종료한 것은 8월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시작된 갈등이 정치분야를 넘어서 경제문제로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 또 임기 말의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양국관계 악화를 막기 위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때 알려진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은 정말로 신중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만기가 돌아온 한일 통화스와프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통화 스와프는 경제 문제로, 한일 외교 문제로 해석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우리 정부의 외환보유고가 3000억 달러에 달하는 데다 일본보다 신용등급도 높지 않느냐”는 말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과의 외교갈등을 표면화하지 않으려는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양국 정부가 한일간 가교(架橋) 역할을 해 온 중요한 경제 시스템을 붕괴시킨다고 지적한다. 양국이 서로 어려울 때 돕겠다는 의지의 ‘물적(物的) 표현’을 없애는 것은 어떤 면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통화스와프 중단 사태는 양국 정부 사이에 ‘자존심 싸움’이 전개되면서 파국(破局)을 예고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지난 8월 독도 방문직후에 일본의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이 종료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일본 측의 다른 관계자들도 통화스와프를 종료시킬 수 있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자 우리 기재부에서도 “한일 통화스와프가 종료된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이 과정에서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 등 한일 협력위원회 일본 측 대표단을 접견했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민간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우리로선 ‘한일통화스와프를 연장하자’며 머리를 굽히고 들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양국 정부가 국내정치적으로 어려운 정치상황에 처한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은 1965년 한일 협정 체결 후, 숱한 정치적 갈등이 경제협력 악화로 연결되지 않도록 유의해왔다. 정치·경제계의 유력인사들은 막후(幕後)에서 서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경제분야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아왔다.
하지만 통화스와프 중단 조치는 한일 관계의 이런 전통을 깼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또 양국이 총체적 갈등상태에 있음을 시인했다고 할 수 있다. 국립외교원의 윤덕민 교수는 “독도 문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이 계속해서 이렇게 커지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며 “양국 정부가 서로 ‘윈윈(win-win·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을 100년 전으로 되돌리려고 한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가 조만간 일본의 새 총리가 되면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으로까지 번진 한일 양국간의 갈등은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미 한일 양국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도 한일 정상회의를 생략할 정도로 거리가 벌어진 상태다. 12월19일 선출되는 한국의 대통령에겐 내년에 부딪히게 될 외교안보 1순위 문제가 일본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