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전상서

[스페셜리스트│문화] 김소영 MBC 기자·문화부


   
 
  ▲ 김소영 MBC 기자  
 
수 년 전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어 열심히 후보를 도왔던 어떤 중견 연극인을 기억한다. 선거가 끝나고, 축제가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이 제각각 자신의 생활로 조용히 돌아갔을 무렵 그도 대학로의 조그만 극장에서 1인극을 올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의 연기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도 배우이기에 객석의 반응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사람들은 환상에 빠지기 위해 돈을 내고 극장에 간다. 그게 예술의 본질이다. 그런데 그는 더 이상 환상을 줄 수 없었다. 배우에겐 어쩌면 목숨과 다름없다 할 수 있는 소중한 이미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가 다시 무대에 섰다는 소식은 그 후에 듣지 못했다.

이번 대선에도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후보 지지에 나서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이니 뭐라 참견할 바는 아니지만 이들을 보면 나는 인어공주 이야기가 떠오른다.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 인어공주에게 마녀는 경고한다. 사람이 되려면 혀가 잘려 말을 못할 것이고, 발바닥은 걸을 때마다 찢어지듯 아플 것이라고. 마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귀족 세계에 속하지 못한 인어가 왕자의 사랑을 잠시 받을 수는 있어도 간택까지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인어공주에게 그렇게도 인간이 되고 싶으냐면서, 무시무시한 조건을 내걸었던 것이다. 예상대로 인어공주는 결정적으로 왕자의 목숨을 구했지만 이웃나라 공주에게 부인 자리를 빼앗기고, 그렇다고 복수도 하지 못한 채, 결국 거품으로 허망하게 사라진다.

많은 유권자들이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언사나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들은 타고난 능력으로 사람의 영혼을 만지고 다루는 사람들 아닌가. 이 가운데 ‘현실참여적’이라는 딱지가 원래 붙어 있는 예술인은 그나마 자유롭다고 치자. 그러나 그렇지 않은 순수한 인사들이 평생 쌓아온 업을 잠시 접고 내린 결정이라면 나는 존중을 넘어 존경하려 한다. 수 십 년 갈고 닦은 이미지가 도움이 되리라 하여 떠밀려 발탁이 되었건, 혹은 스스로 시대를 향한 큰 뜻을 펼치기 위해 나왔건, 선거판에 뛰어든 문화예술인들은 그 자신이 냉정하게 개인적 영달을 따로 염두에 둔 것이 아닌 한 인어공주처럼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가망 없는 사랑을 확인하게 된 것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이번 대선에 출마한 대선후보 7명의 공약을 모두 읽어보고 나서였다.

정작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후보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비통한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문화예술 진흥에 관한 공약을 집어넣은 후보는 문재인 후보뿐. 그러나 그마저도 각론은 대통령 공약이라고 부르기에 난감할 정도로 평이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역시 이번 선거에서도 문화예술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만들어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홍보 효과가 어느 정도이네,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되네, 호들갑을 떨며 옥관문화훈장까지 수여한 것을 생각하면 이쪽 동네에서 살아가는 기자로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까지도 드는 것이다. 오죽하면 지난달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가 ‘책 읽는 나라 만들기 국민연대회의’를 만들고 대선 후보들의 독서진흥 공약을 발표하라고 촉구하지 않았던가.

빈말로라도 21세기 문화 강국, 문화 대통령을 비전으로 제시하지도 못하는 대선 후보들은 정작 문화예술에 관심도 없으면서 문화예술인들에게 손을 벌려 막대한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나는 그래서 인어공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다. 이름 없는 인어들을 위해 밥그릇이나 좀 챙겨 달라고. 죽자 살자 일해도 문화예술인 10명 가운데 6명이 한 달에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빈민층인 것을 기억하게 하자고. 대선 후보들이 달동네로, 시장으로 한 표 부탁하러 다닐 때 극장으로, 갤러리로도 관심을 갖게 해보자고 말이다. 선진국의 시작은 이 보잘 것 없는 곳에서 싹이 튼다고 소리 높여 외치기라도 해 달라. 어차피 슬프게 끝날 사랑에 목숨 걸고 뛰어들었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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