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의 힘
[스페셜리스트│문화] 김소영 MBC 기자·문화부
김소영 MBC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3.02.06 15: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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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영 MBC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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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라. 이 더러운 계집아. 김중배의 금강석 반지가 그렇게 좋더란 말이냐!”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으며 용서를 비는 심순애한테 이수일이 내뱉는 이 유명한 대사는 소설 ‘장한몽’의 줄거리 전체를 요약한다. 몰락한 문벌가 아들과 사랑만 믿고 결혼할 것인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들고 정열적으로 구애해오는 돈 많은 은행가의 아들 품에 안길 것인가. 엔도 슈사쿠의 분류에 따르면 김중배를 선택한 심순애는 ‘삶’이 아닌 ‘생활’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생활이 생계나 살림을 꾸려나가는 일상이라면 삶은 생활보다 고차원의 의미로 인생이라는 뜻과 가깝다 하겠다. 예를 들면 직업은 생활에 영향을 주지만 직업이 그 사람의 삶까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배우자는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아도 삶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다. 삶과 생활 사이엔 교집합이 있어서 무 자르듯 경계를 나눌 순 없지만 그렇다고 둘이 같다고 볼 수 없다.
한 번은 대림산업과 한국메세나협의회가 저소득층 어린이를 대상으로 펼치고 있는 예술교육인 ‘꿈나무 예술여행’을 취재하러 갔다. 인터뷰를 하게 된 초등학교 5학년 A군은 저학년 때 친구들을 때리고 다니는 폭력 가해자였는데 학교에서 합창단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고,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 그림도 그리면서, 성격이 얌전하게 바뀌었다고 이야기했다. 노래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풀어지면서 친구랑 싸워도 먼저 사과를 한다며 최근엔 착한 어린이 상까지 받았다고 자랑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술의 정서 순화 효과이다. 그런데 내겐 A군의 다음 말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집중력이 생겨서 책을 오래 읽어요. 전에는 5분도 못 읽었어요.”
실은 같은 이야기를 5년 전에도 들었었다. 고봉정보산업학교(구 서울소년원)에 갔을 때 일이다. 그곳에 자원봉사 차원에서 예술수업을 하러 오는 국악인들이 있었다. 수업은 사물놀이를 한 시간 정도 연습하는 것으로 간단했다. 학교 교장이 설명했다.“비행 청소년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눈동자가 집중을 못하고 왔다갔다 산만하다는 겁니다. 교사들은 대번 알지요. 학생들이 딴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을. 그런데 음악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한 시간 이상 무섭게 집중을 합니다.”
미국에서 30년 이상 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에 헌신해온 루비 페인 박사에 따르면 저소득층에서 주먹이 자주 사용되는 이유가 말을 할 줄 모르고 말이 존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문제를 대화로 해결할 줄 모르니까 일단 주먹으로 말을 하고 보는 것이다. 반면 중산층에서는 갈등 해소의 도구로서 언어가 다양하고 풍부하게 구사돼 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 다양한 언어의 습득은 부모에게 물려받는 것이지만 가정환경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제도권 교육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이 경우 집중을 도와주는 예술은 노래 한 곡, 화가 이름 하나 더 외우는 차원을 넘어, 일반 교육에 이르는 훌륭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예술을 감상하고, 직접 참여해 즐기는 것은 두뇌에 ‘감정 이입’과 ‘환상’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활발해진 우뇌적 활동은 균형 잡힌 사고와 통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실제로 메세나협의회가 전국의 초등학생 860여명을 대상으로 3년간 예술교육을 해오면서 면담조사한 결과 우울감이 처음보다 60% 가까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과거시험을 위한 학문은 심술(心術)을 파괴한다”면서 “학교에서 예(禮)와 악(樂)을 배워야한다”고 했다. 여타 과목이 주입식 교육이라면 예술은 유일한 표현 교육이다. 요즘 각종 청소년 범죄 뉴스를 접하다보면 사교육에 찌든 아이들이 학교에서라도 예술을 많이 접해 숨통 트이게 해줘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