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 생중계가 보여준 중국의 속살
[글로벌 리포트│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3.03.06 14: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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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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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영방송인 CCTV가 외국인 범죄자에 대한 사형 집행 장면을 생중계하면서 논란이 뜨겁다. 비록 사형을 실제 집행하는 장면은 내보내지 않았지만 사형수 4명의 교도소에서 집행장까지의 이송과정, 그리고 이들의 표정과 모습을 마치 중계방송하듯 내보내 “공개처형이나 마찬가지다”, “비인권적이다”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중국 쿤밍 법원은 지난 1일 미얀마인 나오칸과 그의 수하로 알려진 3명 등 모두 4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이들은 2011년 10월 메콩강 태국 관할 지역에서 중국 선박 2척을 공격해 모두 13명을 살해한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중국 선원들은 모두 손발을 결박당하고 물속에서 숨진 채 발견돼 중국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당시 인민일보는 초반 수사 결과 “중국 선원 살해범은 태국 군인 9명”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이후 ‘골든 트라이앵글’로 잘 알려진 마약재배지의 두목으로 통하던 미얀마인 ‘마약왕’ 나오칸이 배후로 지목돼 중국, 태국, 미얀마, 라오스의 공동 작전 끝에 지난해 5월 체포됐으며 이후 중국으로 이송돼 재판을 받아왔다. 그 결과 나오칸과 수하 3명에겐 사형이, 1명은 사형에 집행 2년 연기, 1명은 징역 8년이 언도됐다. 그리고 재판 개시 석달만에 4명에게 사형이 집행되는 초고속 과정을 거친 것이다.
메콩강 중국 선원 피살 사건은 그 처참함 때문에 중국인들의 분노를 더 불러 일으켰고, 범인들에 대한 신속한 사형 집행은 그런 대중적 분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잔인함 때문에 마약왕으로 행세했다던 나오칸과 그 일당들이 부당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연민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 어떤 생명의 손실도 유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비판한 한 네티즌의 지적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마땅한 엄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를 취급하는 언론 보도 방식에는 적지 않은 불만과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CCTV는 매시간 특집뉴스를 통해 수감됐던 교도소를 나서는 이들의 모습을 사형 집행장에 도착해 들어서는 순간까지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그것도 4명이 함께 이송된 게 아니라 한명 한명 이송되는 과정을 모두 중계카메라에 담았다. 겁먹은 얼굴, 공포에 질린 눈빛, 멍하게 벌어진 입 등 이제 조금 후면 생명이 끊길 한 인간의 ‘막다른 모습’은 화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호송차에 태워지기 전 발에 쇠줄 족쇄가 채워지고 손은 뒤로 결박해 포승줄을 어깨에서 아래로 묶어 내려 포박하는 모습을 보면, ‘아 이제 얼굴에 검은 두건만 씌우고 나면 죽이겠구나’하는 연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흉악범이라고 하지만 한 인간의 생명이 ‘합법적 살인’에 의해 꺼져가는 고통의 과정을 전세계에 중계한 셈이다.
진행자나 현장 취재기자들의 설명 역시 거슬리게 하는 점이 적지 않았다.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 나오칸 등의 모습을 보여주며 -생각해 보라, 잠시 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인간이다- “개개인의 식성까지 고려해 세심하게 준비했다”는 설명이나 “독극물 주사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고려한 것이다”라는 설명은 인간성에 대한 모독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한 진행자는 “시청자들께선 우리 선원들이 당했던 것처럼 저들도 빨리 처참하게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하실수도 있지만 중국은 법치국가이고 문명국가입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 중계 과정은 ‘나쁜놈 너도 한번 당해봐라’, ‘보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비문명적인 것이었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 일으켰던 사건에 대한 단죄를 생중계를 통해 전한 것은 대내적으로는 권력의 강력한 법집행 의지를, 대외적으로는 자국민에 대한 강력한 보호의지와 주변국에 대한 경고 효과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주요 범죄, 특히 ‘사회적 경계’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범죄에 대해서는 그 재판과정을 중계하고 범죄자들의 참회하는 발언을 전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을 계도시켜 왔다. 이번 사건 역시 재판 과정도 공개가 됐었고, 사형집행 중계를 통해서도 이런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언론이 전한 마약왕 나오칸의 최후 한마디는 “나의 자녀들이 나 같은 아빠를 닮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기 바란다”는 ‘적절한’ 참회였다. 이 과정들이 중국적 사고 방식에서는 훌륭한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CCTV는 논란이 커지자 “우리가 살인장면을 중계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사형집행 화면을 내보낸 것도 아니지 않는가?”라고 항변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할 지라도 사형을 집행하기 직전엔 그의 영혼에 대한 구원의 기도를 해준다. 그가 억울하다거나, 죄가 작아서일까? 불완전한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뺏는 ‘제도적 한계’에 대한 반성, 그의 불쌍한 인간 영혼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조심스레 되짚어 볼 점은 사건 본안에 관한 것이다. 이 사건은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중국이 관련된 국제적인 것이었고, 그 해결 과정에서 각국 간에 외교적 협상과 거래가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2011년 10월 사건 직후 인민일보의 보도처럼 애초 현장에서 중국 선원들을 살해한 범인들은 태국 군인 9명으로 조사됐고 그들의 소속까지 밝혀졌었다. 그러나 태국 의회까지 나섰던 사건 조사는 현재 흐지부지됐고 이들 군인들에 대해 처벌이 있었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대신 메콩강에는 공동순찰을 명목으로 중국 경찰이 진입할 수 있게 돼 인도차이나 반도에 미치는 중국의 힘은 증강됐다. 메콩강의 국경 경계를 맡았던 자국 군인들이 연루돼 수세에 몰린 태국의 일정한 양보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마약왕 쿤샤 이후 ‘골든 트라이앵글’을 지배해 각국의 눈엣가시 같던 나오칸은 이 사건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돼 4개국 공동작전으로 제거된 셈이다. 그는 과연 죄값을 ‘제대로’ 받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