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에게 국민을 대변한다고 하는가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5.29 15: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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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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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의 공동취재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차린 것으로 보이는 245명의 한국인 명단을 공개했다. 파장은 컸다. 그러나 발표 당일 지상파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에 비판이 일고 있다.
간추리자면 SBS가 메인 뉴스에서 톱뉴스로 보도하고 해설까지 내보낸 것과는 달리 KBS, MBC의 메인뉴스는 뉴스 중간쯤 배치했다. KBS·MBC 두 방송사의 보도내용 역시 핵심을 비켜갔다. 누가 봐도 고의로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KBS는 ‘뉴스타파’를 ‘한 인터넷 언론 매체’라고 소개했다. 뉴스타파는 인터넷 언론이 아니라 비영리독립언론이자 대안언론이고 탐사보도저널리즘센터라는 기관명도 있다. 그리고 KBS는 ‘뉴스타파’가 주장했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타 언론을 인용하면서 ‘주장했다’라고 보도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뉴스 리포팅을 하며 취재원을 폄하해 ‘주장했다’고 반복한 적이 있긴 하다. 국가안전기획부가 1989년 ‘문익환 목사 간첩사건’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놓고 브리핑을 했을 때 “~ 안기부는 주장했다”라고 거푸 보도했다. 억지 주장처럼 판단됐으니 그랬다. 뉴스타파의 명단 공개도 억지스럽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야기를 달리 해보자. 민영방송 SBS와 비교해도 현저히 차이가 나는 두 공영방송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에 의해 선출돼 국민을 대변한다. 국무위원도 국민대표기구인 국회의 인사청문회라는 절차를 거친다. 기타 공직자도 별도의 법에 따라 신분과 행동을 더 엄격히 규제받는다. 그런 과정과 장치를 통해 국민은 공직자들에게 국민의 권리를 일부 위임했다. 그들이 국민을 대신해 국가 사무를 관장하고 감독하는 권한과 대표성은 이렇게 투표나 법의 절차에 따라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 대중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임명 절차도 거치지 않은 저널리스트가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대신해 국가 정책을 감시·판단하고 해석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자. 누가 그럴 권리를 주었으며 어떤 경로로 그 대표성을 획득했는지 우리의 권한과 자격을 돌이켜보자.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딱히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다. 한국기자협회에 소속된 언론사의 소속 기자라는 것이 유일한 근거일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일부의 자의적인 명분이고 기준이다. 기자협회 회원이 아니라 해서 기자로 인정 못하겠다 할 수는 없다. 더 솔직하자면 기성 언론과 그 기자의 대표성은 청와대와 정부 주요 부처 및 기관, 지방자치단체가 부여하는 기성언론에 대한 예우(?)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그 예우에 비례해 기업 홍보팀의 예우도 결정된다. 인터넷 언론, 대안언론, 주간지, 월간지 모두 기자실을 사용하고 브리핑을 함께 들어도 실제 그들이 받는 대우는 다르고, 때론 기자단 가입 여부도 규제받고 심사를 거친다. 권력기관과 기업은 이를 살펴 언론사와 기자의 예우를 달리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정치인과 관료의 예우 내지는 유착에 예속돼 있는 셈이다.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대신해 사회 현안에 관한 자료를 입수하고 분석할 권리를 국민에게서 받는 게 아니고 정치인과 관료의 대표성에 편승해 얻어 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기자인 우리가 그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있다는 데서 더 심각해진다. 권력에 지불하는 대가 중 하나가 공공성의 포기다. 저널리즘과 기자가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 공공성과 공익 때문인데 대표성을 얻기 위해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공공성을 포기한다는 말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러나 청와대 관련 보도나 조세피난처 관련 보도 등에서 내보인 작금의 언론 현실은 분명 그러하다.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대표성을 획득한 저널리즘은 뉴스타파다. 그들은 대표성을 국민에게 달라고 요구했고, 저널리즘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갈구하는 시민들은 그들을 지지하고 지원했다. 그리고 그 대표성과 요구에 부응해 그들은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공공을 외면하는 비공영언론의 보도가 명실상부한 공영언론을 가리켜 ‘주장을 일삼는 한 인터넷 언론’이라 폄훼하고 있다니 유치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