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딴에 틈새학교'의 꿈

[스페셜리스트│지역]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


   
 
  ▲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  
 

학교와 학원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익힐까? 물론 100%는 아니지만 학교나 학원이 아이들에게 제 노릇을 다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자기 힘으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현실이 그 방증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경남에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조선업체가 있다. 월급도 세고 다른 대우도 빵빵한 대기업이다. 여기 취직한 젊은이 이야기다. 그이는 설계가 전공인데 자기 소속 부서에서 제작한 설계도를 보고 만든 제품이 불량으로 반품돼 왔다.


확인해 보니 그 젊은이가 제대로 못한 탓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부서에서는 바로 연장근로를 해서 ‘불량 수리’를 하자고 의견을 모았고 저녁을 먹고 와서 함께 일하기로 했다. 젊은이는 남겠다고 했다. 동료들은 자기 책임이 크다 보니 혼자 남아 일하려나 보다 여겼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사람이 없었다. 나무람이나 꾸중은 없었다고 한다. 당일은 물론 다음날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며칠 지나 상관한테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였다. 아들이 서울 집에 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명문 사립대학을 나온 한 젊은이의 첫 직장 생활이었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사회에 보탬도 되고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지난해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라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었다. 나름 이윤을 내면서도 사회에 이바지하는 기업이 사회적기업이다. ‘해딴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를 뜻하는 경상도 지역말이다.


‘해딴에’에서 ‘어린이·청소년 여행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아이들을 모아 함께 길을 떠나는 일을 다달이 한 차례 하고 있다. 함께 다녀보면 아이들이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밥과 반찬을 입에 떠넣고 자기 얼굴과 몸을 씻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먹거나 씻고 나서 뒤처리를 할 줄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다. 간식으로 먹은 과자 봉지나 음료수 병은 팽개쳐지기 일쑤다.


그래서 단순한 체험이나 놀이는 조금씩 줄이고 대신 작더라도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을 늘리고 있다.
8월에는 어느 골짜기에서 문화재를 살펴본 뒤 물놀이를 하는 중간에 밥 지어 먹기를 했다. 밥짓기라지만 지어 놓은 밥을 프라이팬에 옮겨 기름을 두르고 김치랑 다른 반찬과 섞어 볶음밥을 만드는 한편 간단하게 국을 끓이는 정도였다.


이렇게만 했을 뿐인데도 많이 달라졌다. 서로 의논하고 일거리를 나누며 협력해야 했다. 누구는 물을 떠 오고 누구는 버너에서 불이 꺼지지 않도록 가림막을 쳐야 했으며 어떤 이는 밥을 덜어 치댔고 어떤 이는 볶는 재료들을 섞었고 누군가는 국 끓일 재료를 씻었다. 서로 맞지 않아 실랑이도 벌였지만 대체로는 순조로웠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먹고 나서 설거지하고 치우기도 즐겁게 스스로 했다. 대부분은 집에서도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자기가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로도 여기지 않는다. 또 이렇게 해서 먹는 밥은 맛이 좋다. 보통은 한 그릇도 먹지 않았을 아이들이 두세 번 밥을 퍼 먹었다. 아무래도 자기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이겠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틈새학교를 떠올렸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이지만 실제 삶에는 도움이 되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가짐을 익힐 수 있다. 먹을거리를 함께 장만하고 설거지도 함께 하며 여러 산천경계를 찾아 속깊은 체험도 하고 또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말로 정리하고 글로 남겨두는 그런 활동을 기본으로 한다.


아이들이 ‘제 몸을 움직여 뭔가 만들어내는 능력’, ‘자기 멋대로보다는 함께 의논하고 협력하는 능력’,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말글로 정리·기록하는 능력’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지 싶다. 나중에 프로그램이 완성되거든 지역사회에 내놓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실컷 활용하도록도 하고 싶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