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포스코·KT 인사개입은 불공정행위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9.25 14: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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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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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정준양 회장과 KT 이석채 회장이 최근 청와대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잇달아 나왔다. 포스코는 정 회장의 사의표명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는 해명자료를 냈다. 하지만 국세청이 마치 때를 맞추기나 한 듯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하면서 청와대 사퇴 압력설은 무게를 더한다.
이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말 10대 그룹 총수 청와대 오찬 회동 때 정 회장을 제외했다. 포스코는 재계 6위의 대기업이다. 또 정 회장과 이 회장은 모두 박 대통령의 방중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찬 초대 대상에서 빠졌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퇴 외압설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반응이 일절 없는 점이다. 조원동 경제수석이 개인차원에서 개입설을 부인한 것 뿐이다. 조 수석은 ‘이석채 회장이 임기와 관련 없이 조기 사임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직접 전달했다는 실명보도가 나왔다. 조 수석은 포스코 회장 관련해서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청와대의 침묵은 사실상 사퇴 압력설을 시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청와대 사퇴 압력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정 회장과 이 회장은 모두 이명박 정권 초기에 임명된 뒤 2012년 초 함께 연임에 성공했다. 두번째 임기는 모두 2015년 초까지다.
정부는 두 회사 주식을 단 한 주도 가진 게 없다. 청와대가 포스코와 KT 경영진 선임에 외압을 행사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자, 시장경제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역대 정부는 마치 전리품처럼 포스코와 KT의 최고경영자 선임에 입김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관행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벌의 불공정거래 관행 근절을 위해 경제민주화를 약속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불공정거래 관행부터 근절하는 것이 순서다. 박 대통령은 10대 그룹 총수 청와대 오찬에서 정 회장을 제외하며 순수 민간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민간기업에도 순수와 비순수의 구분이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청와대가 포스코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자인한 것과 마찬가지다.
청와대의 불공정행위는 해당 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박 대통령은 경제난 타개를 위해 재벌들에게 투자와 고용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포스코와 KT는 재계 6위와 11위의 거대 기업이다. 두 회사의 계열사는 100개를 넘고, 매출액은 100조원에 달하며, 직접 고용하는 종사자만 10만명을 상회한다. 이런 대기업들의 최고 경영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마비상태에 빠뜨리는 것은 투자와 일자리 확충에도 역행하는 처사다.
두 회장은 과거 선임과정이나 재직 중에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2008년 말과 2009년 초 최초 선임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세들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석채 회장도 KT에 아무런 연고가 없으면서, 권력에 의해 낙하산식으로 임명됐다. 취임 이후에는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을 무더기로 고문 등에 앉혀 거액의 보수를 지급하며, 자신의 방패막이 내지 로비 통로로 활용해왔다는 지적을 듣는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런 문제점을 이유로 두 회장을 강제 사퇴시키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누구를 후임자로 앉히더라도, 다음 정권은 그들을 똑같은 이유로 몰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포스코와 KT 회장 잔혹사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박 대통령부터 불공정한 인사개입의 관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