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배려' 두 바퀴로 세상을 전진하다
장애인체전 도전한 머니투데이 머니바이크 이고운 기자
김희영 기자 hykim@journalist.or.kr | 입력
2013.10.09 14:01:55
|
 |
|
|
|
▲ 머니투데이 머니바이크 이고운 기자 |
|
|
“우리가 2등이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지난달 30일 대구에서 열린 제3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사이클 경기. 선수도 코치도 어리둥절했다. 예상치 못한 은메달, 쾌거였다.
그 주인공 중 한 명은 머니투데이의 자전거 뉴스 ‘머니바이크’ 이고운 기자다. 경기도 대표로 나선 이 기자는 이날 여자 트랙 추발 3km 경기에서 같은 팀인 시각장애인 심재경 선수와 함께 2위를 기록했다.
지난 한 달간 두 선수가 연습에 매진한 종목은 2인용 자전거인 ‘탠덤사이클’이다. 이는 비장애인 선수가 시각장애인 선수의 ‘눈’이 돼 호흡을 맞추는 경기다. 한강에서 연인끼리 즐기는 2인용 자전거를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자전거를 아예 처음 배우는 느낌이었다”는 게 이 기자의 이야기다.
이 기자는 6년 전 미니벨로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이후 기어가 고정돼 있는 ‘픽시바이크’를 즐기다 최근 1년 동안에는 프리휠로 마음껏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로드바이크’를 타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마추어 대회 ‘킹오브트랙’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 16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네이버카페 ‘우먼스라이딩’ 관리자이자, 여성 픽시자전거 크루 ‘Fg2’(픽스드기어걸스, Fixedgeargirls) 멤버로 활동 중이다. 이렇듯 자전거 전문가인 이 기자에게도 탠덤사이클은 어렵고 위험한 도전이었던 셈이다.
이 기자는 지난 8월 말 의정부 종합운동장 벨로드롬에서 5년 전 시력을 잃었다는 심재경 선수를 소개받았다. 곧바로 호흡 맞추기에 돌입했지만 주어진 연습시간은 4주뿐이었다. 게다가 벨로드롬의 대여시간이 제한돼 일주일에 하루, 2시간 남짓의 시간밖에 없었다. 자전거는 선수의 몸보다 커 다시 맞춰야 했고, 균형 잡기도 어려웠다. 페달이 발에서 떨어지며 생기는 사고를 피하기 위해 전용 페달에 신발을 고정해야 하지만, 이에 익숙지 않은 심 선수는 스트랩으로 발을 고정시킨 채 경기를 치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심 선수를 위해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심 선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전거에서 떨어져본 경험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와 탠덤사이클을 타던 날 처음 넘어지고 말았죠.”
그러나 심 선수는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무조건적으로 믿겠다”며 강한 신뢰를 보여줬다. 이 기자는 “심 선수는 매사에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자전거에서 떨어졌을 때도 본인 놀란 것보다 저를 더 걱정해줬다”고 말했다. 두 선수의 믿음과 배려가 2위라는 값진 성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전환은 이 기자에겐 더욱 가치 있는 배움이었다. “전국체전 5일 동안 함께 지낸 장애인 선수들은 제가 상상할 수도 없는 한계를 모두 뛰어넘은 분들이었어요. 그분들에게서 어떠한 장애도 느껴지지 않았죠. 낯가림이 있는 저를 오히려 격려해주고 챙겨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이 기자는 청각장애인 부자(父子) 선수가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거머쥔 일, 그리고 히말라야 등반 중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잃은 김홍빈 선수가 80km 도로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완주한 일을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사이클 실업팀 선수인 진용식 선수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아시아선수권대회와 패럴림픽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엘리트지만 그 누구보다 스스럼없고 유쾌한 성격을 지닌 선수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해 ‘글도 쓰고 자전거도 탈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는 이 기자. 원하는 것을 이뤄낸 지금이 행복하다는 그는 이번 대회에 참여하며 겪었던 모든 것들을 토대로 기사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조차 장애인체전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해요. 갤러리도 거의 없죠. 이 대회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고, 많은 장애인 분들이 참여해 건강하게 생활하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