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불안에 대처하는 일본의 착각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외교안보부


   
 
  ▲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  
 
과거사·영토 문제에 이어 방사능 문제가 한일간에 또 다른 갈등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등 8개현 수산물에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빠르면 오는 16일 세계무역기구(WTO) 상품위원회 산하의 식품·동식물위생검역(SPS)위원회 회의에 문제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한국의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만큼 철회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어필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중국과 대만, 러시아 등이 일본 수산물을 수입 금지했을 때는 조용했다. 그런 일본이 한국에 대해 이처럼 유독 과민하게 나오는 것은 최근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빚어진 오해와 관련이 깊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6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가까운 도호쿠(東北) 지역 8개현에서 나오는 모든 수산물에 대해 수입을 전면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와 언론들은 이 같은 한국의 발표가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에 나온 데다 바다를 면하지 않는 내륙지역인 군마, 도치기현까지 수입 금지 지역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올림픽 유치에 재를 뿌리려는 행위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발표 당시 “한국의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는 의도적”이라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수입 금지는 도쿄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려는 (2020년 하계 올림픽) 낙선운동에 불과하다”고 보도했고 다른 보수 매체들도 이에 동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정부의 대응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측의 이런 반응은 과대해석이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8월 2일 국무회의에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떠도는 ‘일본 방사능 괴담’과 관련, 악의적으로 괴담을 조작, 유포하는 행위를 추적해 처벌함으로써 괴담이 근절되도록 해달라”고 관계기관에 지시하는 등 비교적 차분한 대응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 지시를 내린 이후 후쿠시마 원전내 방사성 물질 오염수 유출사고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우려섞인 보도가 쏟아졌고,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불안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한국 정부로서는 일본 아베 정권과 도쿄전력이 오염수 유출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입 검역에 문제 없다” “괴담 유포 처벌하겠다”는 식의 대응으로는 계속 버티기 힘들어졌다.

이런 전후 사정은 일본의 양식있는 언론인들도 이미 이해하고 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일본 모 일간지의 서울 주재 특파원은 “한국이 일본의 올림픽 유치를 방해하려고 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한국 IOC의원들이 개최지 투표 때 어디에 표를 줬는지 취재했더니 모두 도쿄를 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이 (도쿄 개최를) 방해하려 했다면 그렇게 했겠냐”고 반문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WTO 제소 운운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이 문제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한 방사성 물질 측정 결과를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들이대며 “객관적으로 안전하다”고 떠든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사고수습 과정에서 신뢰를 상당 부분 상실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객관적 수치를 아무리 반복해 발표한다고 해도 근본적 불안을 잠재우기 어렵다. 이는 일본 내에서조차 도호쿠 지역 먹거리를 꺼리는 이른바 ‘풍평피해(風評被害·뜬 소문으로 인한 피해)’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불안을 깨끗이 해소하기 위해선 원전사고, 특히 오염수 문제를 투명하고 원만하게 해결하고 있으며, 일본내 수산물 수출검역도 철저하게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줘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는 길 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WTO 제소를 통해 한판 붙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기름에 불을 붙이는 꼴’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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