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윤리를 다시 생각한다

[언론다시보기] 정재민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


   
 
  ▲ 정재민 교수  
 
연구년을 맞아 캐나다에 와있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 한국에서 병원 문 앞에만 가도 울고 의사를 만나면 아예 자지러지던 아이라 외국 병원에 가는 게 망설여졌다.
고열에 시달리며 짜증을 부리던 아이는 막상 의사를 만나자 순한 양이 되었다. 외국인 의사는 비현실적일만큼 친절하고 자상했다.
정말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의사가 제 직업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듣고보니 그렇다.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 친절한 진료가 오히려 이례적으로 보인다.

집 앞 건너편에서는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아이가 구경하고 싶어해서 매일 공사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캐나다에서는 6개월 과정의 기술인력 양성 학원에서도 첫 주에는 반드시 직업윤리 교육이 실시된다고 한다. 내가 부주의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기준에 못 미치는 저가의 불량 자재를 썼을 때 어떤 참혹한 사고가 발생하는지 등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통해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캐나다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접하는 사람들에게서 직업윤리의 실천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기자에게도 직업윤리가 있다.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갖고 있는 기자에게는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더불어 기자들이 지켜야 할 행동기준 열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언론자유 수호, 공정보도, 품위유지, 정당한 정보수집, 올바른 정보사용, 사생활 보호, 취재원 보호, 오보의 정정, 갈등·차별 조장 금지, 광고·판매활동의 제한이 그것이다.

우리 기자들은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 받아쓰기, 베끼기, 오보, 작문, 카더라 통신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지 싶다.

늘어나는 매체 수와 인터넷으로 인한 무한 속보 경쟁, 언론사의 어려운 재정여건 등이 기자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하고서라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뉴스로 유포하거나 날조하는 것만큼은 절대로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오보가 전쟁도 일으켰다. 1898년 2월 15일, 쿠바에 정박 중이던 미국 군함 메인호가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했다.
미국 신문들은 진상을 규명하기보다는 당시 쿠바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의 소행으로 규정했다. 당시 언론은 ‘메인 호를 기억하라’는 슬로건으로 국민들을 자극했고, 결국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날조된 기사의 또다른 사례로 1980년 워싱턴 포스트 자넷 쿡 기자의 ‘지미의 세계’가 떠오른다.
헤로인에 중독된 8살 소년 ‘지미’를 통해 청소년의 마약중독 실태를 다뤄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지미’는 허구의 인물이었다. 풀리처상은 취소됐고 자넷 쿡도 해고됐다. 2003년 뉴욕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 기자도 표절과 인터뷰 조작으로 해고됐다. 다른 신문사 기사를 베꼈고, 하지도 않은 인터뷰를 한 것으로 꾸며서 조작했다. 뉴욕타임스는 5월 11일자 1면에 장문의 사건 경위서와 사과문을 게재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기자로서 직업윤리를 저버릴 유혹이 더 커질지 모른다. 이러다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결국 언론 전체가 신뢰를 잃게 된다.
더 늦기 전에 양화가 악화를 구축해서 저널리즘을 지켜야한다. 기자들은 왜 기자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한 사람의 의사가 실수를 하면 한 사람의 생명이 위험해지지만, 한 사람의 기자가 실수를 하면 우리 사회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 직업이 기자인 사람은 기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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