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 신뢰외교에 갇힌 박근혜 정부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외교안보부


   
 
  ▲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  
 
동북아시아 정세가 또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의 힘이 격렬하게 맞부딪히고 있다. 19세기 말의 국제 정세를 연상시킨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정세 속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거나 안이한 판단을 하게 되면 언제든 비극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야말로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격랑을 헤쳐나가는 방법으로 ‘신뢰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개인들이 공존하기 위해 상호신뢰가 필요한 것처럼 국가 간에도 신뢰가 있어야 평화와 공동번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 그리고 G20 정상회담, APEC 정상회담, 동남아 순방, 유럽 순방 등의 숨가쁜 외교일정을 소화하면서 이 ‘신뢰외교’를 현실에 구현하려 노력했다. 지난 8월 박 대통령의 집권 6개월 국정수행을 평가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외교안보 분야가 수위를 차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박 대통령의 이런 노력은 일단 국민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신뢰외교의 앞날을 낙관만 할 수는 없게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신뢰외교는 대화와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상대방의 태도 변화를 요구한다. 상대가 먼저 신뢰할 수 있게 행동해야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런 수동적인 접근법은 대북정책과 대일외교에서 너무나 닮은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화와 압박이라는 두 정책 수단을 균형 있게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유도해 나가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북 대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약속을 지키고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9월27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 경남대 초청특강)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대화보다는 압박에 방점이 찍혀 있다. 북한이 먼저 ‘진정성 담긴 비핵화 조치’를 보여주지 않는 한 북핵·6자회담 재개는 꿈도 꿀 수 없다. 남북 경제협력이나 인적교류도 마찬가지다.

대일외교도 비슷한 양상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이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문제 등에서 먼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한·일 정상회담은 성사되기 어렵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현 상황에서 한·일 정상회담은 역효과만 난다는 인식을 여러차례 드러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대일외교는 문제의 돌파구를 미국과 중국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교된다. 6자회담의 경우 대북 레버리지를 갖고 있는 중국을 움직여 북한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일본과의 과거사·영토 갈등의 경우도 미국의 협조를 얻어 아베 정권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겠다는 접근을 취하고 있다.

미·중 양국을 통해 외교안보 난제를 풀 수만 있다면 이런 접근법도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의 이런 수동적 외교대응은 현실에서 점점 기대와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한·중 정상회담 이후 한·중 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인식을 상당 부분 공유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6월 이후 북한이 대화공세를 펴자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미 양국을 상대로 6자회담 재개를 설득하고 있다. 이는 한·중 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은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을 통한 대일 압박도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우리 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와 미 의회 등에 계속 우려를 전달하고 있지만 미국 측은 오히려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대북, 대일 외교의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상대가 먼저 변하기를 기다리거나 ‘힘 있는 제3자’가 도와주기를 바라는 수동적 자세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즘처럼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던 구한말 우리 조상들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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