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성공 DNA가 금융서도 통할까

[스페셜리스트 | 금융]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금융부


   
 
  ▲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  
 
“잘하는 사람은 뭘 시켜도 잘해.” VS “맞지 않는 일을 시키니 잘할 수가 있나.”
어떤 게 맞는 말일까.

2일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가 있었다. 8명의 부사장이 새로 사장으로 승진했고 8명의 사장이 보직을 바꿨다. 국내 최고의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그룹 인사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유독 눈에 띄는 인사가 있었다. 바로 삼성의 주요 금융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사장이었다.

삼성생명에는 김창수 삼성화재 사장이 옮겨갔다. 자산과 인력 모든 면에서 훨씬 큰 회사로 옮겼으니 사실상의 영전이다. 삼성카드에는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이 승진과 함께 사장 자리를 꿰찼다. 두 사람 다 진정 축하할 일이다.

이인용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은 인사를 발표하면서 “실적에 따른 성과주의 인사를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원 사장에 대해서는 “삼성전자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삼성카드에 접목시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렇듯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드는 것은 왜일까.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은 삼성화재에서 2년간 경험을 쌓았다고는 하지만 1982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삼성물산에서 성장한 인사다. 삼성물산에서 감사팀장과 인사팀장을 했고 잠시 보안업체인 에스원에서 전무를 지낸 후 다시 삼성물산에서 기계플랜트본부장을 했다. 금융업 경험은 고작 2년이 전부다.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은 삼성전자의 인사통이다. 1984년 삼성전자로 입사한 후 인사팀 과장과 미국 주재원, 북미총괄 경영지원팀 부장과 인사팀장을 지냈으며 이후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 인사기획그룹장, 경영지원실 인사팀장 등을 지냈다. 이번 인사로 난생 처음 금융업에 발을 내딛는 셈이다.

삼성이 ‘잘 하는 사람은 뭘 시켜도 잘한다’는 확고한 믿음에서 물산과 전자 출신 인사를 금융 계열사로 보낸 것이다.

요즘 동양그룹 사태로 금산분리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사이에 확실한 경계를 둬야 한다는 것이 바로 금산분리의 핵심이다. 산업자본은 개인 돈이고 금융자본은 선량한 불특정 다수 국민의 돈이기 때문에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에 손댈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금산분리다.

물론 금산분리는 돈에만 한정된 논의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사이에만 벽을 치면 되지, 산업계에서 성공한 인사가 금융계로 가고, 금융계에서 성공한 인사가 산업계로 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인사는 금산분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제조업 출신 인사가 금융업에서 실패한 사례를 너무 많이 보아왔다.
지난 2001년 이계안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현대캐피탈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자동차의 성공을 금융에서 다시한번 구현하려 했다. LG의 전신인 럭키금성 출신의 이헌출 전 사장이 1997년부터 LG카드로 옮겨 금융의 성공을 시도한 적도 있다. 삼성 역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에서 성장한 제진훈 전 사장에게 2000년부터 삼성캐피탈을 맡겼다.

하지만 제조업 출신 DNA가 금융업에서는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제조업에서는 남들보다 앞선 부지런함이 더 높은 판매실적으로 이어졌지만 금융업에서는 남들보다 많은 대출실적이 부실을 잉태했다.

제조업은 생산에서 시작해 판매에서 마무리되지만, 금융업은 대출에서 시작해 관리로 이어지는 산업이다. 이를 체득하지 못한 제조업 출신 CEO들은 대출실적 경쟁에만 몰두했고 대출 이후의 채권관리는 소홀했다. 결국 이들은 2003년 카드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

삼성생명 삼성카드의 새로운 수장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제조업 성공인자를 금융업에서 다시 한번 꽃 피우려는 삼성의 실험이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 다만 금융 당국은 불필요한 국민의 피해를 초래하지 않을지 더욱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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