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었던 2013년 문화계

[스페셜리스트 | 문화] 김소영 MBC 주말뉴스부장


   
 
  ▲ 김소영 MBC 주말뉴스부장  
 
올해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게 남다르게 기대되는 게 있다면,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삼은 첫 번째 정부라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7월 관련 시행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문화융성위원회’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안전행정부 장관, 교육부 장관 등 장관 3명을 포함시켜 대통령 산하 정책자문위원회로 출범시켰다. 문화라는 거대 담론이 행정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냐의 이론적 갑론을박은 차치하고서라도 역대 어느 정권보다 문화에 관심과 의욕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문화예술계가 올해처럼 참담했던 시기도 없는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국보 1호 숭례문의 부실 복원공사이다. 사실 숭례문은 불탄 그 순간에 예술적 아우라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껍데기의 복원은 누구를 위한 복원일까? 나는 문화강국 프랑스에서 비슷한 화재가 발생했더라면 오히려 불탄 그 모습 그대로 보전하자는 의견도 복원 의견 못지않게 강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슨 아파트 재건축 공사도 아닌데 복원공사 기간을 5년으로 잡은 것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셈이다. 준공 반년도 안 돼 스무 곳 가까운 단청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은 지나치게 짧은 복원 기간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어쨌든 이 문제는 변영섭 문화재청장의 문책성 경질로 쉼표를 찍고 표류중이다.

문화계 수장의 수난은 문화재청장뿐만이 아니다. 독일에서 귀화해 한국관광공사 수장에 오른 이참 사장도 어이없이 사퇴했다. 그것도 임기를 무사히 마친 상태에서 후임 사장이 지명될 때까지 추가 근무를 하다가 일본 출장길에 안마업소에 갔다는 구설수에 휩싸여 불명예 사직했다. 그의 사퇴가 안타까운 것은 이사장의 임기동안 한국 관광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4년 전 외래 관광객은 680만에서, 올해는 그 두 배에 가까운 1200만 이상을 바라볼 정도가 되었다. 또 박종길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자신 명의의 목동 사격장을 가족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공문서를 변조한 것으로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술계의 오랜 염원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경사스런 개관 직후에 나온 정형민 관장 퇴진 운동도, 웬만한 일에 나서지 않으려는 성향의 미술계 인사들까지 불만을 터뜨리는 것을 보면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문화계 현장에서도 그 여느 해보다 잡음이 많았다. 한국시인협회가 근대 인물 112명에 대한 시집 ‘사람’을 내면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에 대해 호평 일색의 시를 실었다가 시집을 전량 회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문예지 ‘현대문학’은 원로 작가 이제하의 소설 연재를 석연치 않은 이유로 거부했다가 ‘유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 것이냐는 문단의 거센 항의를 받고 대표가 주간 직에서 사퇴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비하면 황석영 소설의 사재기 논란은 거의 애교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봐야할지 난감한 올해의 문화계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코 전두환 전대통령 컬렉션 경매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과정에서 검찰이 압류한 전씨 일가의 압수 미술품 600여점은 서울옥션과 K옥션에 나뉘어서 경매가 되고 있다. 이제까지 두 번 경매 모두 100% 낙찰률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세워졌고, 미술품 경매 회사에는 경매에 관심을 갖게 된 일반 회원이 두세 배씩 늘었다고 한다. 사회적 관심이 문화적 관심으로 변한 거의 유일한 사건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기업 자금세탁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미술품 재테크에, 사람들의 작품 보는 눈이 흐려진다고 걱정하던 작가들이 이 사태를 어떤 심정으로 바라볼지 자못 궁금하다. 모든 것엔 봄여름가을겨울 흐름이 있다는 성현의 말씀을 굳이 되새기지 않더라도, 올해 이렇게 문화예술계에 험한 일이 많았으니 내년에는 좋은 소식, 즐거운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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