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드는 언론과 옳은 언론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1.06 14: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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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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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인 내가 봐도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더라.”
한 경제학 교수는 정부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파업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에 기자에게 황당해했다. 당시 진보성향 언론과 보수성향 언론이 각기 일본 철도 민영화 실태를 조명한 기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진보언론은 일본 국철이 27년 전 철도민영화를 통해 7개 회사로 분리된 뒤 대도시노선을 확보한 회사와 그 외 지역을 확보한 회사 사이에 양극화 심화, 극심한 인력감축과 시설 노후화로 인한 안전사고 빈발 등 폐해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보수언론은 이용객이 증가하고 사업다각화로 회사수익이 늘었으며 안전사고가 줄고 요금인상도 거의 없었다고 긍정 보도했다.
진보언론은 요금인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보수언론은 실적 양극화와 안전사고 증가 등의 부작용도 있다는 점을 각각 기사 말미에 덧붙였지만, 곁가지였을 뿐이다. 동일 사안을 놓고 정반대 보도가 나온 것이다. 논리적으로 두 기사 모두 맞을 수는 없고, 둘 중 하나는 틀릴 수밖에 없다. 아니면 둘 모두 틀렸던가. 두 보도 중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한쪽 눈은 감은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한국 언론 전반의 문제에 먼저 주목해보자. 일본 철도 민영화 보도는 ‘외눈박이 한국언론’의 실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한국언론은 자기 입맛에 맞는 조각들만 모아 모자이크식으로 짜맞춘 뒤 마치 전체인양 호도한다는 지적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한쪽 편을 드는 언론으로는 올바른 해법이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최근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하되 기업부담을 감안해 소급청구권은 제한할 수 있다고 선고했다. ‘솔로몬의 지혜’까지는 아니더라도, 원칙과 현실을 모두 감안하며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보수진보 언론은 각기 진영논리에 충실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조명하는데 소홀했다. 한 대기업 총수는 기자에게 통상임금 문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생산직 기준으로 당장 임금부담이 40% 늘어난다. 만약 올해 과거 3년치를 모두 소급적용하고, 매년 5%씩 올리던 통상적인 임금인상까지 그대로 시행하면, 지난해 벌어들인 2000억원의 순이익을 모두 임금상승분에 충당해야 할 판이다.”
기업들은 비용이 늘거나 수익이 줄어들면 본능적으로 회피수단을 찾는다. 벌써부터 국내 생산기반 축소라는 부담을 감수하면서, 국내 생산물량을 해외공장으로 넘기기, 국내 고용 축소, 연장·야간·휴일근로 폐지 등의 대안마련에 나섰다는 얘기가 들린다. 만약 이게 현실화한다면 좋은 일자리 창출은커녕 기존 고용안정까지 위협하게 된다. 결국 노사가 합리적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공멸인 셈이다.
우리사회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가 시끄러워도 발전이나 성장이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또 보수-진보, 좌-우 두 진영의 힘이 엇비슷해지면서, 혼자 독주할 여력은 없어도 남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막을 수 있게 됐다. 경제민주화, 동반성장, 복지, 민영화, 의료 영리화 등 최근 우리사회를 달구고 있는 수많은 논란들에 대한 해답이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 것은 이를 못깨닫고 과거의 ‘독불장군 프레임’에 갇힌 때문이다.
2014년을 맞아 많은 국민이 위기의 심화를 우려하는데, 역설적으로 위기는 사회적 대타협의 어머니다. 위기가 아니면 누구도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등 여러 선진국들은 위기국면에서 사회적 대타협에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는 진영논리가 강하고, 양극화 심화로 사회계층 간에 위기의 체감 정도가 달라 대타협이 쉽지 않다. 사회의 대화와 소통, 합리적 대안 마련을 위한 언론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언론은 대화와 소통은커녕 사회갈등을 더욱 조장, 증폭시키는 주범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판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자들에게 “갈등의 당사자도 아니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언론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계속 한쪽 편만 드는 언론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사실을 제대로 보고 말하는 옳은 언론으로 나아갈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