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소통과 교황의 "대화하세요"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김준현 변호사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1.15 14: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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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현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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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새해에는…’이라고 적어도 한가지씩 소망을 품기도 하고 결심을 다짐한다. 저마다 자신만의 소망을 빌어보고 실천을 다짐하는 것이 새해를 맞는 쏠쏠한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언론계에서도 새해 다짐은 많을 듯 하다. 해직기자들은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에 따뜻한 손을 내미는 기사가 넘쳐나야 한다. 자본과 권력에 굴하지 않은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펜대를 구현하는 기자들도 취재현장에 붐벼야 한다 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지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10가지 새해다짐이란다. ‘험담하지 않기, 음식 남기지 않기, 타인을 위해 봉사하기, 검소하게 소비하기, 편견버리기,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친화하기, 가난한 이들을 직접 만나기’ 등이다. 주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것과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한 가치관을 말해주는 항목이다.
“역시 교황님이야”라는 생각으로 직접 내용을 찾아봤는데 실제로는 교황이 직접 내세운 새해다짐은 아니었다. 교황의 평소 설교내용 중 새해다짐으로 삼을 만한 것 10가지를 해외의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편집한 내용이었다. 그래도 뒤늦게 교황의 새해다짐을 언급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와 언론인들이 귀담아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교황의 새해다짐 중에는 ‘의견이 다른 자와 친화하기’라는 항목이 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지난해 7월경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 중 이 문제에 대해 다음같이 말했다. “수많은 분야의 지도자들이 조언을 구하여 올 때마다 저의 대답은 항상 똑같습니다. 대화하세요. 대화하세요. 또 대화하세요. 그것만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성장하고, 삶을 진보시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편견없는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만난다면 사람들은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참 간단 명료하지만 가장 강력한 해결책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곤 한편으론 “단순한 기계적 만남이라든지 국민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소통이냐. 그것은 소통이 아니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 내용이 떠오른다. “비정상적 관행에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소통이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과 비교해보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공의 차이가 느껴진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막론하고 교황 따라잡기 열풍이 불고, 타임지가 2013년 인물로 교황을 선정한 것도 괜스레 이뤄진 게 아님을 알 수 있을 듯하다.
교황의 다짐 중에는 정치인은 물론 언론인에게도 초심을 잊지 말자는 차원에서 권할만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타인을 판단하지 않기’같은 항목이다. 편견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는 “동성애자가 하느님을 선한 의지로 찾는다면, 내가 누구이기에 그것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 누구도 개인의 특별한 사생활을 물리적으로 간섭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자유로운 사람으로 창조했다면, 지금 그 자유인을 간섭하려는 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라고 강조한다.
덧붙여 언급하고 싶은 것은 ‘남을 험담하지 않기’. 이른 바 뒷담화 하지 말기다. 남의 잘못이나 흠을 들추는 험담은 진실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고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 상처만 남긴다. 뒷담화는 취미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가장 악한 행동 중 하나다. 교황은 “타인을 험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말살하는 살인행위와 같다”고 설교해왔다.
복지에 관심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라’는 항목도 살펴보자. 교황은 가난한 자들의 입장에 함께 서있지 않으면서 자선을 베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한다. 근본적인 체제의 문제점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이는 교황이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며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지적한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
순진하게도 교황의 새해다짐이 널리 퍼져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변한다면 하는 상상에 한 순간이나마 즐거워졌었다. 이쯤에서 나도 새해다짐 하나 정도는 해야겠다. 오는 8월경 교황의 한국방문이 추진된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꼭 교황에게 ‘조언’을 구하길, 아니 교황님이 꼭 조언해 주시길 기도 드리는 것을 소박한 다짐으로 삼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