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서울변회에 주홍글씨를 새길 자격을 줬나

[스페셜리스트 | 법조] 류인하 경향신문 기자·사회부 법조팀


   
 
  ▲ 류인하 경향신문 기자  
 
#1.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민사법정 출입구 앞 게시판에서 50대 여성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이 여성은 “오늘 재판이 있는데 ‘변호사님’께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무실로 전화해보라고 하자 이 여성은 그제서야 사무실로 전화를 했지만 “변호사님은 오늘 다른 재판에 들어가셨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어 재판이 연기됐다고 했다. “장사도 접고 왔는데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하니 상대편은 “그런 건 본인이 스스로 챙겨야 한다. 바쁘신 변호사님이 그런 걸 어떻게 일일이 다 알려드리냐”고 했다. 이내 통화는 끊어졌다.

#2. 40대의 불구속 피고인이 자신의 재판을 기다리는데 정작 변호사는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변호사는 20분이 지나서야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추가로 제출할 것이 없냐”는 재판장의 물음에도 “없다”고 했다. 재판장은 “이 사건은 쟁점이 3가지 정도로 나뉘고 피해액수 산정부분도 다툴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변호인은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냐”고 질책했다. 변호인은 “다음기일 전까지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답변했다. 20분 늦은 변호사가 의뢰인을 위해 이날 할애한 시간은 3분 남짓이었다.

#3. 민사법정 앞에서 사람들이 변호사를 둘러쌌다. 한 의뢰인이 “현장에 직접 가서 확인하고 서류도 떼고 사진도 찍어왔는데 왜 이걸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냐”고 따졌다. 또 다른 의뢰인은 “저번에는 연락도 안 되시더니 좀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다. 변호사는 “상대쪽 변호사가 전관입니다. 이기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이렇게 몰려서 다 찾아오시고 그러면 판사님에게 좋지 않은 인상이 남을 수 있습니다”라고 한 뒤 자리를 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이달 말에 ‘2013년 법관 평가’를 발표하면서 하위법관 5명에 대한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서울변회는 2008년부터 매년 소속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상위 법관과 하위 법관을 선정하고, 자료를 대법원에 전달해왔다. 하위 법관은 비공개 처리해왔다. 그런데 대법원이 올해도 법관평가를 법관 인사고과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하자 ‘하위법관 명단공개’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그런데 서울변회가 만든 법관평가가 과연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만한 자료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정성과 신뢰성은 결국 조사방식이나 표본집단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담보된다. 그러나 지금껏 법관평가에 참여한 변호사는 전체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 중 극소수에 불과했다. 실제 지난해에는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 9100명 가운데 5%에 불과한 460명만이 법관평가에 참여했다. 2011년에는 7934명 중 4.9%인 395명만이 법관평가에 참여했다. 전체 변호사의 절반은 커녕 소수의 의견만을 가지고 하위법관 명단을 공개한다는 것은 ‘발칙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분명 막말판사를 비롯해 잘못된 재판진행을 하는 법관은 그에 상응하는 징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징계에 대한 부분은 법원 내부의 자정작용이 우선돼야 한다. 그 누구도 변호사에게 그 역할을 하라고 권한을 쥐어준 적이 없다. 특히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법관평가’라는 공식 명칭 아래 전체 회원의 5%정도에 불과한 일부 변호사의 주관적 평가에 따라 해당 법관에게 주홍글씨를 부여하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법원 내에서 서울변회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의뢰인을 위해서라는 명분이라면 앞서 제시한 사례와 같은 변호사들을 먼저 가려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지난 한 해 동안 전국 변호사 중 대한변협의 징계처분을 받은 변호사는 전체 1만5956명의 1.3%인 22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적발된 사례도 변호사로 선임돼 수임료를 받고도 사건진행을 하지 않고, 수임료도 돌려주지 않거나 항소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변호사, 소멸시효가 지나서야 소장을 접수한 변호사 등 의뢰인의 이익과 직결된 사안에서 잘못을 저지른 경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변회는 법관의 잘못된 재판진행으로 의뢰인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하위법관 명단공개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이런 경우를 두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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