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든 무엇을 사든 개인정보 달라고 아우성
[스페셜리스트 | 금융]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산업부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1.29 14:12:59
|
|
|
|
|
▲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 |
|
|
1월 7일, 미국 라스베가스. 세계 최대의 소비자 가전 전시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4가 열렸다.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 LG전자를 필두로 일본의 소니, 샤프, 파나소닉 그리고 미국의 인텔, 퀄컴, 야후, 시스코, 중국의 하이얼, 하이센스, TCL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전자·IT 기업들이 총출동했다.
올해 CES를 가로지르는 화두는 ‘사물 인터넷’이었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사람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 스스로 대응하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집주인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실내 온도를 몇 도에 맞추는지를 분석해 보일러가 알아서 적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심장 박동이 빨라질 때는 어떤 음악을 듣고, 심장 박동이 느릴 때는 어떤 음악을 선호하는지 파악해 MP3가 음악을 추천한다. 평소에 운동하는 양과 걸음걸이 수면시간 등을 분석해 맞춤형 다이어트와 건강진단을 제시한다.
먼 미래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네스트랩이라는 온도조절기 회사가 실제로 그런 제품을 내놓았고, 소니가 심장박동을 체크해 선호하는 음악을 추천하는 제품을 선보였고, LG전자가 운동량과 심박수 등을 체크하는 팔찌와 이어폰을 출시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주인이 평소에 어떤 길을 자주 다니는지, 운전 습관은 어떠한지, 운전자가 자주 다니는 지역은 어디인지 등을 체크해 운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을 시연했다.
하지만 첨단의 IT기기들이 하나씩 실현해 나가고 있는 장밋빛 미래는 개인정보를 무한히 제공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단순히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수준이 아니라 개개인의 습관과 취향, 심장 박동수와 병력 등 모든 것을 망라한 ‘빅데이터’가 형성되면서 얻을 수 있는 편리함이다.
CES 2014가 개막하던 7일. 한국의 서울에서는 1억여건 개인 정보 유출 소식이 전해졌다. 이튿날인 8일에는 창원지검이 KB카드, 롯데카드, NH카드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돼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개인정보 유출 소식은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한 달이 가까워지도록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불러왔다.
솔직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가입 한번 하고 나면 다음 날 아침부터 부쩍 늘어난 스팸 문자들과 대출 권유 전화들을 경험하지 못한 바 아니다.
다만 ‘혹시나’ 하면서도 ‘설마’하며 애써 덮어두었던 것이 반복되면서 무감각해졌을 뿐이다. 피싱, 스미싱 등 기상천외한 수법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서도 ‘당사자가 뭔가 잘못했겠거니’ 하면서 외면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무시했던 것들이 신용카드를 통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고 보니 그간의 불안감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 뿐이다.
이젠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비단 카드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CES 2014에서 보았듯이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사장님’이 편해지려면 모든 일정을 비서와 운전기사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처럼 좀 더 편리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내 개인정보는 카드 은행 보험 같은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통신회사, 홈쇼핑업체, 포털사이트, 택배업체, 패밀리레스토랑, 영화관, 백화점, 할인점 등 곳곳에 제공됐다. 어디 그 뿐인가. 스마트폰을 통해서 내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도 기록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좀 더 편하게 살아왔고, 동시에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도 커졌다.
앞으로 세상이 요구하는 개인정보는 더 늘어날 것이다. 때마침 표적이 된 카드사만 갖고 호들갑 떨 게 아니라 개인정보 제공과 관리, 보호 등에 대해서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