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심의위원 자신부터 돌아보라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변상욱 CBS콘텐츠본부장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2.03 18: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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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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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의 공공성, 정보통신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올바른 이용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설립된 대한민국의 기관’이다. 이곳은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민간독립기구이다. 그러나 명분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 보장된 기구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위촉한 9명의 심의위원으로 구성되는 이 위원회는 여야 정치권이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된다. 그것도 여권이 6명, 야당이 3명이다. 결국 구성으로는 정치적 기구이고, 역할로는 방송에 대한 행정심의기구라 칭하는 것이 현실에 부합한다.
이런 여건에서 심의위원들은 방송 프로그램들, 특히 정치권력과 정부 정책을 다룬 프로그램들의 공정성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인간은 사회 현상의 인식과 해석에 있어 자신의 입장이나, 가치관, 경험 등에 의해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속한 사회, 경제, 문화, 역사적 조건으로부터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편견이나 오류에 빠져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식사회학에서는 이러한 지적 작업에 얽혀 있는 사회적 한계와 제약을 ‘존재 피구속성’이라고 부른다.
이 존재 피구속성은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자도,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심의자도 피해갈 수 없는 태생적 한계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과학적으로 ‘존재 피구속성’을 극복하고 객관성과 공정성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고와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먼저 사실에 최대한 접근해야 한다. 가능한 많은 관련 자료를 구해 해독해야 하고, 현장을 뒤지고, 당사자·증인·참고인·전문가를 만나야 하고 진술 내용의 진실성을 재기 위해 분석하고 경험과 직관을 사용해 속내를 간파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수고들 이전에 제작진도 심의자도 갖춰야 할 덕목이 있으니 그것은 ‘받아들임’…‘변화의 수용’과 ‘다양성의 수용’이라고 생각한다.
변화의 수용에는 시대의 변화도 있고 자신의 변화도 있다. 세상이 달라진 걸 받아들여야 한다. 중공이 중국이 된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양성평등의 기준도 달라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제왕적 군부정권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지키고 누려오던 가치관과 기준이 옛 것이 되어 버렸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판단력과 세상을 보는 눈 또한 기성세대가 되어 연륜도 쌓였지만 그에 비례해 자신이 기득권에 익숙한 수구적 성향을 띨 위험성도 짙어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불편하게 보이는 것에 마음과 귀를 열어야 한다. 이런 태도가 선결되어야 눈앞에 놓인 현상도 자료도 진술도 바로 읽을 수 있고 제대로 들을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그런 것이 부족하기에 ‘불통공화국’이라는 자조적인 힐난도 듣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들과 이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이상실에 빠지게 한다. 방송의 공정성을 따지는 심의위원이 “당신 언론 생활 몇 년 했느냐, 25년? 나는 30년 했다”…이렇게 근속연수로 공정성의 근거를 제시한다면 우리는 어이상실일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첫째는 추천과 위촉 과정에서부터 비롯된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공안검찰관들, 관변 매체에서 굴종으로 뼈가 굵은 언론인들을 공정성 심의관으로 선택하는 것이 과연 이 시대에 공정성을 담보할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공정성은 다양한 의견과 견해가 제공돼 시청취자의 판단을 도울 때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출연자 섭외에 과거 ‘공안’과 ‘관변’의 기준을 들이대며 방송에 출연시켜서는 안 될 인물을 지정한다면 그 심의는 공정한 걸까? 방송이 지향하는 공정성의 목표는 다양성 즉 다양한 견해가 소통될 수 있는 공공의 장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보지 못하고 ‘그 사람은 안 된다’, ‘10분 간 인터뷰에서 여당 편이 짧았다, 진보 쪽이 약했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산술적 균형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방송전파가 국가자산이어서 공적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건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가적 큰 틀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불평등하게 누려지지 않도록 방송전파의 남용과 오용을 감시해 자유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게 옳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다양한 언론사들이 비판과 감시기능을 잃지 않고 존재하도록 시장을 감독해야 마땅하다. 방송사에 그 자리에 왜 그 사람을 불렀나 따지기 이전에 그 자리에 왜 앉아 있는지 자신부터 돌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