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판사님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스페셜리스트 | 법조] 류인하 경향신문 기자·사회부 법조팀


   
 
  ▲ 류인하 경향신문 기자  
 
매년 2월달 법관 정기인사가 마무리되고 나면 기자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올 한 해 동안 함께 지낼 공보판사가 누구냐’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의 진행경과 확인을 비롯해 각종 소소한 민원(예를 들어 법정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재판장에게 사전허락을 받아달라, 판결선고 후 보도자료를 배포해달라 등)을 부탁해야 할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 공보판사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공보판사에게 확인·문의전화를 한다.

때문에 어떤 판사가 공보판사로 오느냐는 기자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언론에 비협조적이고 고자세인데다가, 때로는 특정 언론 편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공보판사를 할 경우 기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이 공보판사 자리라는 것이 판사들 사이에서도 ‘기피대상’이긴 하다. 판사신분인데 판사대접(?)도 못 받고, 어린 기자에서부터 법조지식이 전무한 기자들을 상대하다보면 때로는 짜증나고 답답한 일도 많은데다 연일 이어지는 술자리 역시 고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법원 내부에서 (언론이) 알게 모르게 터지는 소소한 말썽거리를 해결하는 것 역시 공보판사의 몫이다(물론 수석부장판사나 원장의 보조역할일 가능성이 더 높다).

올해도 역시 1년마다 돌아오는 새로운 공보판사 라인업이 갖춰졌다. 벌써부터 각 민·형사·파산·행정·가정·고등법원 공보판사에 대한 평가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이 공보판사는 과거 공보판사를 한 전력이 있고, 이 공보판사는 관련 경험이 전무하다는 등의 경력과 관련된 정보부터 시작해 인간관계에 대한 정보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헉’할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신원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한 공보판사가 기자로부터 자료요청을 받자 “굳이 이렇게 많이 찾아야 하냐” “나는 항상 바쁘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보판사 역시 유사한 발언으로 기자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었다.

발령 받은 지 한 달은커녕 2주도 채 되지 않은 공보판사가, 기자와의 첫 대면자리에서 비상식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당사자들로부터 전해들었을 때 ‘그렇게 소통을 강조하는 사법부가 고작 뽑은 사람이 이런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판사의 방이 항상 기자들에게 열려 있을 수는 없다. 공보판사제도는 판사들이 일일이 기자를 만나 자신이 선고한 판결의 취지를 설명하고 대응하는 어려움을 덜고, 각 담당 공보판사가 언론에 보다 정확한 판결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자들의 원활한 취재활동을 지원하는 역할 역시 공보판사의 몫이다. 결국 최전선에서 사법부의 ‘입’ 역할을 해야하는 셈이다.

법원으로 출입처를 옮기기 전 경찰청을 출입한 적이 있다. 그곳의 홍보 및 공보담당 경찰관들은 판사들 못지 않은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들이었다. 그러나 사건이 터져 새벽 5시에 확인전화를 해도, 자정이 지난 새벽 2~3시에 연락해 잠을 깨워도 경찰관들은 귀찮은 내색 없이 모든 전화에 응대했다. 통계자료가 필요하거나 해명이 필요할 경우 즉각 관련 자료를 기자들에게 제공했었다. 기자에게 편의를 제공한 측면보다는 경찰과 언론의 소통단절로 인한 ‘오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컸을 것이다. 그 효과는 꽤나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같은 기억을 토대로 지난해 전국 공보판사 워크숍 자리에서 당시 공보판사들을 상대로 강조했던 것이 “전화만큼은 꼭 받아달라”와 “어떤 자료를 요청했을 때 ‘모른다’ ‘그런 자료는 없다’라고 바로 말하지 말라” “법률지식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언론을 상대로 무시하는 듯한 발언은 삼가 달라”였다. 이 같은 말의 기저에 깔린 기본 전제는 ‘판사의 권위를 조금이라도 벗고 언론과 소통할 자세를 취해달라’는 것이었다.

올 한 해가 지나갈 무렵 “참 좋은 인연을 맺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부디 ‘권위’는 조금 벗고 낮은 자세로 기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공보판사님들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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