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그대 열풍과 한·중 관계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외교안보부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3.12 14: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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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진 세계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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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인기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약칭 별그대)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 방송되면 불과 수시간만에 중국어로 번역돼 중국 동영상사이트에 올라가고, 주요 포털의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다. 특히 여주인공 전지현이 “눈오는 날에는 치맥(치킨+맥주)인데…”라는 대사를 한 뒤에는 조류독감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중국 전역에서 프라이드 치킨이 동이 나는 사태도 빚어졌다. 상하이의 경우 치킨집 앞에 3시간 정도 장사진이 형성되기도 했다. 남주인공 김수현이 즐겨 읽었던 한국 고전소설 ‘구운몽’은 바로 다음날부터 중국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중국 정치권까지 별그대 붐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권력서열 6위인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위원회 서기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베이징시 대표단 회의에 별그대를 극찬하며 중국 문화산업이 따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이런 별그대앓이는 다른 나라들의 눈에도 신기한 현상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8일자에서 ‘한국의 드라마가 중국의 모범이 될까(Could a Korean soap opera be China’s guiding light)’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의 별그대 열광 현상을 보도했다.
중국에서의 별그대 인기의 원인에 대해선 드라마의 높은 완성도와 뛰어난 연기력, 그리고 이를 잘 조합한 연출력 등 한류산업의 경쟁력이 가장 기본적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지금 왜 유독 중국에서 별그대 광풍이 부는 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든다.
최근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중국 사회 분위기에서 한류가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 정부 및 공산당이 이를 적극 부추기고 있는 듯한 현상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현상이다.
필자가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했던 2009년부터 2011년 말까지 일본 TV 방송에서는 한류 드라마가 붐을 이뤘다. TV를 켜기만 하면 한국 드라마나 한류스타 소식이 나오는 그야말로 한류의 절정기였다. 도쿄 신주쿠의 신오쿠보 거리(한인타운) 주변에는 한류 드라마 관련 기념품과 음식, 패션을 즐기려고 일본 전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일본의 대형 서점가에는 한류 코너가 별도로 설치될 만큼 관련 책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 유명 정치인들이나 그 가족들이 너도 나도 골수 한류팬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당시 만난 일본인이나 재일한국인들은 이런 한류붐의 기원을 대부분 ‘겨울연가’의 성공에서 찾았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일본인들이 한류 드라마 가요의 뛰어난 경쟁력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한류가 붐을 이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2012년부터 일본에 우경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한류 작품의 방영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신오쿠보 주변에선 혐한 시위가 잇따랐다. 그동안 한류 마케팅을 적극 이용했던 일본 매스미디어들이 마치 단합이라도 한 듯이 한류에 차갑게 등을 돌렸다.
일본 정치권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담론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한류가 흥했으나 과거사·영토 갈등으로 한·일관계가 냉각되자 그 많던 일본의 한류 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한류 열기는 가라앉아 버렸다.
일본의 이런 사례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중국에서의 한류붐도 단순히 문화적 요인만으로는 그 성공을 전부 다 설명할 수 없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국제 정치적 요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별그대를 비롯한 중국의 폭발적인 한류붐은 지난해 6월 한·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붐이 거품처럼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한류 문화산업 내부의 경쟁력 제고뿐만 아니라 한·중 관계의 지속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