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서 3월 서울 벚꽃을 보며
[스페셜리스트│지역]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 · 갱상도문화학교추진단장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4.02 15: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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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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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미쳤다. 대박이 예상되는 최신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전국 동시 개봉’이 돼 버렸다. 보통은 동백이 피고 나서 목련이 꽃을 피우고, 매화·산수유가 꽃을 벌린 다음에야 벚꽃·진달래가 피어난다. 그러고 나서 따뜻한 경남이라 해도 유채는 4월 중순이나 돼야 그 뒤를 이어 꽃이 피어나는데 올해는 이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다 피어나버렸다. 어떤 데는 조팝나무에서조차 꽃이 피어났을 정도고, 벚꽃은 이미 서울에서까지 활짝 피어났다. 서울 벚꽃 3월 개화는 기상 관측 이래 처음이라고까지 한다.
꽃이 이렇게 한꺼번에 피고 보니 오히려 자연의 질서를 알겠다. 봄꽃들은 서로서로 조금씩 맞물리면서 피고 살짝 어긋나면서 진다. 동백꽃이 피어나서 한창을 지나 조금씩 시들 즈음에 목련이 꽃을 피우고, 목련꽃이 내리는 빗줄기에 후두둑 떨어질 조짐이 보이면 매화 봉오리가 벌어진다. 또 이를테면 유채꽃은 벚꽃이 남쪽을 지나 서울·경기 쪽에 다다를 즈음 남쪽 바닷가에서 노란 꽃을 세상으로 뿜어낸다.
이런 식으로 지나친 겹침도 번짐도 없이 그리고 공백도 없이 시간의 경계선을 슬그머니 흐리면서 즈려밟는 것이 봄꽃의 속성이었다. 이렇게 슬몃슬몃 서로 넘겨짚고 기대면서 이어지다 보니 봄철 내내 꽃이 끊어지지 않았고 사람들 또한 이런 꽃들 덕분에 지난 겨울 어깨를 시리게 만들었던 차가운 얼음을 녹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올해는 한꺼번에 전국 동시 개봉을 하고 보니 꽃구경조차 오히려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예전에는 시차를 두고 돌아다니면 한 가지 꽃을 질리도록 볼 수 있는 데가 여러 군데였다. 올해는 여러 꽃이 한데 뒤섞여 피고지는 바람에 마치 여러 색깔 물감으로 황칠해놓은 도화지를 보는 것 마냥 어지러움을 느끼게 됐다. 이를테면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홍매화축제가 3월30일 열렸는데, 이날 경내 홍매화는 절반 넘게 꽃이 져 있었고, 벚꽃과 산수유, 그리고 동백으로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었다.
앞으로 남은 봄날은 또 어찌해야 하나. 생물학적 지식이 충분하지는 않은 처지라 결실과 생장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 알 도리는 없지만, 지금 꽃들이 지고난 다음에는 틀림없이 연두를 지나 초록만이 온통 넘쳐날 텐데, 지금 왕창 피어난 꽃들이 그때 다시 피어줄 까닭이 없으니 그 단조로움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물론 이리 말하면 팔자 늘어진 꽃 타령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여태까지는 꽃소식이 제주를 지나 전남·경남을 거쳐 수도권과 강원까지 차례대로 북상해왔다. 전국 자치단체들과 민간 조직들은 지역 특성에 맞도록 꽃 관련 축제나 놀이를 마련해 장사를 해 왔다. 적지 않은 상인들도 이런 꽃 관련 축제나 놀이에 맞춰 남에서 북으로 차례로 올라가며 난전을 펼쳐왔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이번에는 단박에 사라졌다. 경남 창원 진해도 벚꽃이 만개했고 서울 여의도 벚꽃도 더없이 벌어졌다. 말하자면 예전에는 사람들이 벌이를 할 수 있도록 봄꽃이 차례대로 피고지고 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열어줬는데, 지금은 전국에서 동시에 피고지고 함으로써 그 시간과 공간을 가로막고 말았다.
올해는 꽃샘추위가 없었다. 말하자면 이상기후였다. 지난해 이상기후는 한반도 전역을 한 달 가량 뒤덮었던 눈으로 기억된다. 한 해는 지나치게 추웠고 다른 한 해는 넘치도록 따뜻했다. 이런 이상기후의 원인을 많은 사람들은 자연 생태 파괴에서 찾는다.
사람들은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을 망가뜨리고, 쓰는 과정에서도 생태계를 부서뜨린다. 그러면서 지구는 더워진다. 이제 더는 지구를 덥히지 말아야 하지 싶다. 따사로운 봄날 제대로 된 꽃구경을 위해서도 그렇다. 이런 봄꽃을 활용해 조금이나마 지역경제를 활성화해 보려는 자치단체를 위해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