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법감정에 고민 깊어가는 사법부

[스페셜리스트 | 법조] 류인하 경향신문 기자·사회부 법조팀


   
 
  ▲ 류인하 경향신문 기자  
 
“무기징역 정도로 선고 안 하면 가만히 안 둘 걸요.”
22일 현재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이레째에 접어들고 있다. 당장 현장에 갈 수 없는 법조 기자들도, 법원에서 여느때와 다름없이 재판을 하고, 판결문을 작성해야 하는 판사들도 모두 웃음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초·중고생 자녀를 둔 판사들은 “아이들이 눈에 어른거린다”며 술 약속도 미루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고발생 다음날, 오후 8~9시가 되도록 기록을 검토하며 불을 밝히던 많은 법관들의 사무실이 닫혀 있었다. 오래 전부터 잡혀있었던 술 약속도 취소되기 일쑤였다. 저녁이면 더욱 붐비는 서초동 식당가에는 “예약 취소건이 많다”는 주인장들의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다.

1993년 292명의 사망자를 냈던 여객선 서해훼리호 사건 당시 친척을 잃은 한 부장판사는 “23일만에 수습된 시신을 내가 신원확인을 하러 들어갔는데 차마 쳐다보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모두가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있다.

검경합동수사본부가 20일 선장 이준석씨(68)와 3등 항해사 박모씨, 조타수 조모씨를 유기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또 22일 1등 항해사 신모씨 및 강모씨, 2등 항해사 김모씨, 기관장 박모씨 등 7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유기치사란 법률상·계약상 구조 및 보호의무가 있는 자가 의무를 위반해 타인을 숨지게 만들었을 때 적용하는 죄목이다. 범죄혐의의 입증책임은 검찰에 있다. 세월호가 침몰 직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도 승객에 대한 대피지시 등 구호조치 없이 각자 위치를 이탈해 탈출한 경우 유기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는 앞으로 재판을 통해 가려질 일이다.

그런데 기소가 되기 전부터 법원 내에서는 ‘과연 검찰이 기소한 죄명으로 유죄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까’ 여부보다 ‘형을 높게 내리지 않으면 여론의 비난이 거셀 것’이라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유기치사죄의 법정형과 달리 국민 법감정은 무기징역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사법부가 미리부터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 부장판사는 “박근혜 대통령마저 선장이 배를 버리고 도망친 것을 두고 ‘살인’행위라고 명명한 상황 아니냐”며 “어떤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맡게 될지 모르겠지만 무기징역 정도로 선고하지 않으면 그 비난을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부의 판단이 ‘법전(法典)’에 적힌 법률에 따라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법감정’에 따라 이뤄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법은 냉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선장을 비롯한 승선원들이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더라도 사법부는 법과 원칙이 정한 형량에 따라 선고형을 결정해야 한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형제자매이기 이전에 법관은 법에 따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법관을 향한 외부의 비난이나 비판이 부당해보이더라도 법이 정한 원칙이 쉽사리 흔들려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말에 아이를 학원에서 데려오려고 기다리는데 저 멀리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아들을 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는 한 부장판사의 말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는 저마다의 슬픔에 빠져 있다. 부디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무사히 구조돼 오랜시간 마음 졸이며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는 부모의 품에 돌아올 수 있길 바란다. 이 비극을 만들어낸 수많은 가해자들의 처벌은 그 다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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