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자책(六事自責)이라 했거늘…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김준현 변호사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5.14 14: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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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현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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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해마다 노란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4월이면 진도 앞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귀한 생명을 떠올리며 눈물짓겠지요.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 정권의 침몰이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붕괴이고, 언론의 장례식이라고. 맞습니다. 속속 밝혀지는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 부재, 국민 목숨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체제, 희생자들의 입장에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오히려 정권 보호에 열을 올리는 언론…. 온갖 추악한 모습이 다 드러났습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요. 이 정부는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는가요. 기울어져 가라앉는 배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는데, 전 국민이 간절한 염원을 담아 눈시울을 붉히며 기원하고 있는데, 단 한 명의 승객도 구하지 못한, 아니 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정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무능할 줄은 몰랐습니다. 도대체 청와대는 언제 보고를 받았는지 어떠한 지시를 했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국무회의에서 사과하는 것으로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영정을 가슴에 품은 유가족이 청와대 앞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웠는데도 문전박대하는 것이 이 땅의 지도자입니다.
나라에 재난이 발생했을 때 지도자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옛 문헌만 봐도 그렇습니다. 은나라 탕왕은 가뭄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스스로 문책합니다. 이른바 육사자책(六事自責)입니다. ‘정치가 잘못되었는지, 백성을 지나치게 부렸는지, 궁실이 화려한지, 궁궐에서 여자들이 정사에 관여하는지, 뇌물이 성행하는지, 아첨하는 사람이 들끓는지’를 스스로 자책합니다. 여자들의 정치 관여는 옛 군주제이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다섯 가지는 지금도 통용될 듯 싶습니다.
고려사에도 이 같은 가르침은 나옵니다. 고려 명종은 제사를 제때 올리지 않아 가뭄이 들었으니 신하들을 처벌하라는 상소에 허물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일곱 가지 일로 스스로를 반성합니다. 억울한 옥살이는 없는지,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를 제대로 보살피는지, 부역과 조세는 지나치지 않는지를 되돌아봅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고, 탐관오리와 간사한 자를 축출하며, 혼기를 놓친 남녀를 도우며, 반찬 가짓수를 줄여 정치를 바로하고 백성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재난을 만난 지도자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물론 지금은 군주제도 아니고 임금은 백성의 어버이라는 명제가 통용되는 시절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유권자 51.6% 지지율로 당선되었지만 전체 국민의 대통령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당선이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과 같은 부정선거로 인한 것이더라도 말입니다.
억울한 옥사를 바로잡는다는 것에서 얼마전 2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된 서울시 간첩조작사건을 떠올립니다. 검찰은 무죄에 반발해 대법원에 상고를 했더군요.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를 보살핀다는 말에서 역시 생활고로 자살해야했던 송파구 세모녀 사건이 연상되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겁니다. 탐관오리와 간사한 자들은 업계와 관료간 유착에 의한 관피아 뿐만은 아닙니다.
탐관오리와 간신은 청와대에도 있습니다. 유신독재의 잔당이 여전히 권력의 핵심에 있으며, 박 대통령 역시 그 정점에 있지 않습니까.
이젠 그들은 세월호와 함께 무너져가는 이 땅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또다시 ‘선동’이니 ‘종북’이니 하며 몰겠지요. 국민의 분노는 해운사나 세모그룹, 선장에게 쏠리도록 교묘히 언론을 통제하고 여론도 조작하면서요. 몇몇 언론은 반성은 고사하고 맞장구치며 추모열기를 불순세력으로 몰아가는 모습도 연출하더군요. 그러나 노란색 리본은 진도 팽목항에서, 안산 분향소에서, 그리고 전국 곳곳 거리에서 계속 나부낄 것입니다. 탐욕스러운 자본과 무능한 정권에 희생된 아이들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의 희생자들은 이 비열하고 야만스러운 천민자본주의 시대를 불사르는 불꽃으로 우리 가슴에 되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