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 KBS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5.21 15: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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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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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CCTV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한국의 가장 큰 방송국입니다.” 얼마전 사무실 이전을 위해 만난 건물주에게 중개업자가 KBS를 소개하며 던진 말이다. 무슨 심오한 비유나 악의가 있어서 한 말은 결코 아니다. 그저 KBS는 중국의 CCTV(中央電視臺)처럼 ‘그런 정도로 크고, 안정적이고 중요한 기관이니, KBS가 세들어 있다 하면 다른 한국 기업 고객들도 주목을 하게 될 것이니 아니 좋소’하면서 ‘그러니 임대료 좀 낮춰주시오’ 하려고 한 바람잡는 말일 뿐이다.
사실 중국에 와서 소개를 받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바로 ‘한국의 CCTV’라는 말이었다. 처음엔 ‘조금 다른 면이 있죠. CCTV는 국영이지만 KBS는 공영입니다. 이게 뭐가 다르냐 하면 말이죠…’ 하면서 국영과 공영의 차이를 설명해 주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다가 ‘그러면 사장은 누가 임명하죠?’라고 물어온다. ‘이사회에서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은 하죠’하면 ‘에이 그럼 그게 그거네’ 하면서 웃곤 했다. 국영 아니면 민영인 나라에서, 시민사회가 착근조차 되지 않은 나라에서, 한국인들도 헛갈려 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공영’의 개념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설명조차 너무 구차한 상황이 돼버렸다. 폼나게 치켜세워주려고 농반 진반으로 하는 ‘한국의 CCTV’가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모멸적 상황 때문이다. 더구나 여기 나와 있는 교민들 간에도 KBS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늘고 있는 상황을 직간접으로 느낄 때면 전에 없던 겸연쩍음과 위축감까지 느껴진다.
“파업 돌입후 기자들은 2012년 한 해 동안 ○○의 검열로 삭제, 수정된 건수가 1034건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 언론 환경에선 아직도 ○○의 검열, 개입이 그만큼 일상적인 것으로, 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에 들어갈 단어는 ‘정부, 중국’이지, ‘정부, 한국’이 아니다. 지난해 초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중국 광둥성의 주간지 ‘남방주말’ 사태 당시의 글 한토막이다. 그러나 최근 KBS 사태의 도화선을 제공한 KBS 보도국장의 ‘청와대만 보고 가는 사장이 사사건건 보도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보면 중국의 일이라고만 치부하기에도 쑥스럽게 됐다.
CCTV의 메인뉴스는 저녁 7시의 ‘뉴스연합보도(新聞聯播)’이다. 9시에 다시 한 번 반복하는 이 30분짜리 보도는 중국 전역에 의무적으로 전송되는 가장 중요한 뉴스다. 그만큼 중국 정부가 국가를 통치하는 데 활용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 뉴스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중국 지도자들의 그날 움직임과 발언을 소개하는 것으로, ‘정부 소식’을 맨앞에 올려 상무위원급 이상의 움직임을 소개한다. 시진핑 주석의 외국 순방이라도 있는 날이면 그 소식만 10분, 어떨 땐 20분 이상을 집중 소개하는 그야말로 ‘중국 정부의 입’이다. 이러니 중국의 젊은이들은 CCTV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다. ‘CCTV 뉴스를 보고 세상 돌아가는 걸 안다고 한다면 바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외면을 받고 있다.
우리도 이런 때가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다. 이른바 80년대의 ‘땡전 뉴스’다. 9시가 ‘땡’하고 뉴스가 시작되면 ‘전두환 대통령은…’하고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루는 대통령이 새벽에 빗자루를 들고 동네 어귀에 나가 청소를 하는 것조차 톱뉴스였다. ‘땡전 뉴스’는 한국 방송의 치욕적인 과거다. 그러나 부끄러운 건 그 과거가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는 데 있다. 앞서 KBS 보도국장은 사장의 압력과 관련해 ‘대통령 관련 뉴스는 어떻게든 위로 올리고, 20분안에는 반드시 소화하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신보도지침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니 1년 반 동안 대통령과 청와대를 단 한번도 비판하지 않았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CCTV는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 과정에서 ‘당의 입과 혀’라는 중요한 선전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 역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뭐 아직도 이런 후진 국가가 다 있어’라며 혀를 찰 순 있어도 최소한 그들 나름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제도적 틀에 기반한 충실한 방송을 하고 있다.
‘공영방송 KBS’, 멋있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권력의 노리개’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방송은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할 의도도 없다’며 입으로는 염불을 외면서도 실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철저하게 방송을 장악해 잿밥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 위장된 선전매체로 CCTV보다 나을게 없다.
거대한 중국에 와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그래도 어깨를 폈던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활력 넘치는 경제력 덕이었다. 이제 중국 경제는 한국을 넘어, 일본을 넘어 미국을 넘으려 하고 있다. ‘그래도 네 놈들은 아직 안돼’ 하는 게 남아 있다면 바로 고난 속에서 소중히 키워온 우리의 민주주의, 민주적 가치들이다. KBS를 CCTV로 만들려 하고, 국가정보원으로 ‘종북 딱지’를 붙이는 공포정치를 획책하고, 방송통신위원회로 언론과 국민에게 재갈을 물리려 한다면 대한민국은 유신독재 시대나 다름없는, 우리가 후진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회주의의 ‘당-국가’체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고한다. 정말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KBS를 ‘청와대의 혀’가 아닌 ‘눈엣가시’로 만들어라. ‘청와대의 혀’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버려라. 입안의 혀는 너무 달콤해서 그대의 눈을 흐리게 할 것이지만, 눈엣가시는 비록 크게 거슬리나 그대가 항상 ‘책임 있는 선장’임을 깨우치게 해 그대의 실패를 줄여줄 것이다. 유신독재는 결국 ‘대통령의 혀’가 되고자 하던 자들의 다툼 끝에 피맺힌 총성으로 무너졌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제일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우리의 굴절된 현대사다. 일본을 향해 일갈하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 우리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