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루머, 그 사이에서
[스페셜리스트] 김소영 MBC 사회2부장
김소영 MBC 사회2부장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5.28 15: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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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영 MBC 사회2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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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언론학자들로부터 미디어에 관한 최고의 역사 교과서로 손꼽히는 ‘뉴스의 역사’란 책에 나오는 말이다. 저자인 미첼 스티븐스에 따르면 미디어의 역사는, 뉴스를 향한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간’을 단축시켜온 역사와 다르지 않다. 입소문에서 인쇄물로, 인쇄물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인터넷으로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인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한 SNS의 시대를 맞았다. 그의 말대로 뭔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당연히 내용이 새롭고 남들보다 빠르게 전해지는 소식에 솔깃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터. 뉴스가 거의 실시간으로, 그것도 널리 전해지는 위력을 지닌 SNS는 우리의 본능을 그 어느 때보다 만족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빠르고 강한 전파력을 지닌 SNS는 바로 그 ‘빠르고 강한’ 특징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게 루머의 확산일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 의도된 정보, 악의적인 정보가 대책 없이 퍼져나간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한 때 SNS를 달군 잠수함 충돌설부터 ‘살려주세요’ 카톡 문자까지 허위로 밝혀졌다는 사실을 굳이 기억하지 않더라도, 천안함 격침설, 연예인 성매매설, 일본 방사능 괴담 등 SNS가 퍼뜨린 루머의 예는 꽤 된다. 어찌나 빨리 퍼지는지 옛날에 종이 신문이나 책에 의해 루머가 확산되는 것과는 속도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보 과부화의 시대, 인터넷의 특징으로 꼽히는 집단 지성의 자정 능력은 왜 루머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일까. 미 대통령실 산하 정보규제국 실장이었던 캐스 선스타인은 ‘동종애의 원리’라는 것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선스타인은 사람들이 자신과 의견이 같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에 자기 견해에 더 확신을 갖게 되어 보다 극단적인 방향으로 견해를 확장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본래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를 원하는 까닭에 종종 집단의 지배적인 입장에 맞춰 자신의 시각을 조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는 ‘이랬다’로 ‘설마 그랬을까’는 ‘그랬다’로 루머는 강화되며, 결국 뉴스의 탈을 쓰고 인터넷을 떠돌게 된다.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루머는 밋밋한 뉴스보다 훨씬 흥미롭고 자극적인 법이다. 맹신되는 믿음 앞에서 ‘사실’은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 ‘뉴스’는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모른다. 뉴스보다 루머에 더 귀를 쫑긋 세우는 주객전도 현상을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쏟아지는 언론 보도 속에서 우리는 목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세월호 루머가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이제는 루머가 선거로 옮겨간 듯한 태세이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터넷 SNS가 또 다시 들썩이는 중이다.
인터넷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말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지라도 상기할 필요는 있다.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클릭 한 번에 수많은 정보를 눈앞에 펼쳐놓는 인터넷은 사려 깊은 지식의 습득, 귀납적 분석, 비판적 사고, 상상 등 인간 고유의 두뇌 활동을 약화시키고 있다. 뉴스와 루머를 구분할 기회를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빼앗기고 살아가는 셈이다. 지금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듣되 멈추고 생각할 ‘시간’과 말을 하되 의도적인 ‘여유’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