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앞이 전쟁터처럼 되지 않으려면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6.04 15: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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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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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삼성타운에는 글로벌기업 삼성전자의 본사가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19일부터 삼성전자서비스 하청노동자 수백명이 철야농성 중이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마다 장송곡이 울리는 가운데, 최근 자살한 동료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안은 노동자들이 노조활동 보장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삼성돌이’를 한다. 시위 노동자들과 삼성 사이에서 수많은 경찰과 경찰차들이 방패막이를 한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이 모습은 한국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사 갈등의 부작용은 단순히 파업 등으로 인한 생산손실 차원을 넘어 나라경제의 지속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일례로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적 변화와 맞물린 시급한 과제임에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노사협력이 가능한 지속적 노사관계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노사 양쪽의 상충되는 요구 사이에서 타협을 이루려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본 원칙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 원칙에 따라 양쪽 주장을 점검해서 살릴 것은 살리고, 양보할 것은 과감히 양보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노사협력의 기본 원칙으로 국민 모두가 먹을 수 있도록 경제 전체의 파이는 최대한 키우되, 그 파이를 공정하게 분배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성장과 분배의 병행’은 어떨까? 성장을 해야 분배가 가능하고, 분배를 해야 구성원들이 성장에 동참할 유인이 생긴다. 성장과 분배는 맞물린 톱니바퀴 같아서 둘 중 어느 하나가 빠져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동안 노사는 각자 자기 입맛에 맞는 하나만 강조하고, 나머지 하나는 무시해왔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제119조 1항(시장경제)과 2항(경제민주화)을 통해 시장경제의 효율성(성장)과 분배를 똑같이 강조한다. 또 독일이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가장 안정적이고도 효율적으로 경제를 꾸려가는 비결은 이런 원칙에 바탕한 ‘사회적 시장경제’시스템 때문이라는 평이 많다.
노사 쟁점들에 성장과 분배 병행원칙을 적용해보자. 먼저 유연성 문제다. 노동계는 그동안 유연성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단정해왔다. 하지만 유연성이 기업 경쟁력을 유지·강화시켜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감수할 필요도 있다. 경영계도 유연성은 곧 감원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감원은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구매력 축소로 이어져 분배는 물론 경제 전체의 성장과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결국 노사 모두 유연성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재검토해야 한다.
독일이 2009년 경제위기 당시 실시한 노동시간 단축 프로그램은 성장과 분배 병행원칙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사례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 속에서 독일 노사는 감원 대신 노동시간 단축에 합의했고, 정부는 줄어든 임금의 일부를 지원했다. 독일 기업은 감원을 포기했지만 인건비 부담을 줄였고, 무엇보다 숙련인력을 유지함으로써 경기 회복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었다. 노동자는 일부 임금은 포기했지만 일자리를 지켰다. 정부는 예산부담이 늘었지만 실업률 상승 억제, 경제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결국 노사정 3자 모두에게 윈윈이 됐다.
근로시간 단축에도 성장과 분배 병행원칙은 적용된다. 현대차 노사는 수년간 논란 끝에 지난해부터 근무방식을 종전의 ‘10+10 주야 맞교대제’에서 ‘8+9 주간연속2교대제’로 전환했다. 단순한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 경쟁력 저하와 근로자 임금 축소를 낳을 수 있다. 노사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생산성 제고와 임금 유지를 서로 맞바꿨다. 이를 통해 근로자는 근무시간이 줄었지만 임금은 종전 수준으로 받았다. 대신 회사는 생산량을 유지하고,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발판을 덤으로 얻었다.
노사협력을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회사 경영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나아가 경영참여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게 된다. 때마침 국회에서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1명 이상 두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경영계는 경영권 침해라고 반발한다. 하지만 노사협력을 이룬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 상당수 유럽국가들은 이미 노동자 경영참여를 제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