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속 진실찾기
[스페셜리스트 | 법조] 류인하 경향신문 기자·사회부 법조팀
류인하 경향신문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7.16 14: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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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하 경향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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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연히 법정에 들어갔다가 관심을 갖게 된 사건이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우연히 본 27살 어린 15세 여중생에게 “연예인 할 생각이 없냐”고 접근해 임신까지 시킨 파렴치범 사건이었다.
필자가 법정에 들어간 날은 항소심 결심공판이었다. 이 40대 남성은 이날 최후진술에서 자신은 그 27살 어린 여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내 자식으로 기를 것이라고 했다. 남성은 눈물을 쏟으며 재판장에게 하소연했다.
피해학생의 부모가 문제가 있어 아이가 가출을 한 것이고, 27살이라는 나이차를 두고 사람들이 편견과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그녀’와 자신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성관계도 합의하에 했다고 주장했다.
꽤나 그럴듯했다. 절절하게 자신의 결백을 하소연하는 남성을 보면서 필자도 ‘어쩌면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관계를 맺은 죄는 있지만 진짜 사랑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재판장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판장은 “피고인은 아까 최후진술에서 ‘그 사람이 처벌을 원하면 처벌을 받겠다’고 했는데 피해자는 진심으로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고 있습니다. 처벌 받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남성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대답을 멈칫하다가 “그건 그 사람의 뜻이 아닐 겁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제가 원하는 답은 그게 아닙니다. ‘네’ ‘아니오’로만 답을 하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남성은 또다시 “재판장님…그건…그 사람은 제 처벌을 바라지 않습니다”라며 눈물을 쏟았다. 재판장은 또다시 물었다. “‘네’ ‘아니오’로만 답해주세요.” 그러자 남성은 그제야 “네…그 사람이 원한다면 처벌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 뜻이…아닙니다”라고 했다.
자신의 입으로 ‘그 사람이 처벌을 원한다면 처벌을 받겠다’고 말한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아 본심은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법정은 남성에게 온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재판장은 질문 하나로 그 남성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감정에 호소하는 최후진술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실제 이 남성은 피해학생이 임신하자 길거리에서 10대 여학생을 상대로 헌팅을 하고 다녔다. 피해학생을 사랑했다는 말과 법정에서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남성은 항소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모든 판사들이 법정에서 피고인이나 원·피고가 주장하는 ‘진실’이 ‘사실’인지 간파해낼 수는 없다. 때문에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하다. 검사가 거짓말을 해도 사법부가 이를 제대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지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당시 국정원이 조작한 증거를 제출했을 때도 한차례 보여준 바 있다. 변호인들이 직접 중국 현지에 찾아가 확인하지 않았다면 재판부는 거짓증거라는 사실도 모른 채 판결을 선고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부장판사의 경험담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꿔줬는데 그 사람이 돈을 갚지 않아 소송까지 왔다. 돈을 꿔준 사람의 말은 구구절절 맞아보이는데 이 판사는 원고패소판결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빌려줬다면 빌려준 흔적이나 증거가 남아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차용증은커녕 계좌이체 증거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재판장이 전지적 시점에서 “넌 돈을 빌린 게 확실하니 돈을 갚아라”라고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오랜 판사생활을 한 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진실’과 법정에서 인정되는 ‘사실’은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설령 무죄라도 진짜 죄가 없는 것이 아닐 수 있고, 유죄라도 결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달 선고를 앞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진실찾기’ 사건이 선고를 앞두고 있다. 과연 이 사건들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진실은 찾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