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뮤지컬
[스페셜리스트 | 문화] 심연희 KBS 문화부 기자
심연희 KBS 문화부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8.13 15: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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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희 KBS 문화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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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 갑자기 클래식 음악회에서나 만날 법한 ‘헛기침 세레나데’가 펼쳐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공연이 시작되자 멀쩡하던 나는 갑자기 사레가 들렸다. 눈물을 흘리며 홀로 가슴을 치다 김준수의 노래, 고음이 폭발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세차게 기침을 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 일제히 주변 어둠 속에서 나를 향해 꽂히던 싸늘한 시선들. 아니나 다를까. 1막이 끝난 뒤 인터미션, 불이 밝자 이번엔 더욱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내가 무언가 굉장히 잘못했구나. 나중에 알았다. ‘준수님’께서 극에 몰입하는 중 감히 기침을 하다니 이런 무엄한지고! 극악무도한 결례를 범한 자 누구냐. ‘기레기 너냐?’
늘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된다는 어마어마한 티켓파워, 김준수의 힘을 몸으로 느꼈던 자리다. 그런데 또 궁금해진다. ‘신성불가침의 그분’은 정말 얼마나 받을까. 김준수의 출연료는 천정부지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가 벌써 오래전이다. ‘묻지도 궁금해 하지도 말라’, ‘그저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적다는 정도로만 생각해 달라’, ‘회당 1억이 넘는다’ 등 여러 설이 전해지지만 안타깝게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건 뮤지컬에서 취재가 안 되는 것은 김준수의 출연료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적 관객 수, 매출액 등 어떤 공연이 진정 관객의 선택을 받고 흥행하고 있는지 알려면 이 같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뮤지컬에선 이 기초적인 정보조차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제작사에 물어보면 티켓판매처인 인터파크에 물어보라 하고, 인터파크는 제작사에서 밝히기 꺼린다며 떠넘기는 핑퐁게임을 한다. 뮤지컬을 특집 기사로 다룰 때마다 나는 자막에 ‘인터파크 추정치’라는 이상한 문구를 넣어야 했다.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가 흥행 성적 등 여러 정보를 공개하고 정기적으로 통계도 내는데 뮤지컬은 여전히 주먹구구다. 많은 공연업체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위기라는 말이 늘 떠돌지만,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본 자료가 없다. 지난 6월 중견 제작사인 ‘뮤지컬 해븐’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최근에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가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해 공연을 취소하는 사례를 보면서 업계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왜 공연계는 폐쇄적일까. 죽는다고 하면서도 왜 공개를 꺼리는 걸까. 문제의 근원은 이미 많은 공연업체가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카드에만 돌려막기가 있는 게 아니다. 이번 공연이 망하면 허겁지겁 다른 공연을 올려 새로 받은 투자금으로 이전 빚을 돌려막는 것이다. 새 작품에 들어가야 할 돈이 다른 데로 가니 신작의 작품 수준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그래서 새 작품이 성공하지 못하면 또 다른 작품을 올려 빚을 막는다. 악순환이다.
꼼수도 쓴다. 예매 순위를 올리기 위해 주요 예매 시간대에 표를 사고, 밤늦게 다시 환불한다. 객석을 가득 메워 흥행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지나친 할인과 초대권을 남발한다. 이런 게 환하게 드러나면 투자자들이 돌아설 게 뻔하니 공개를 못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폭탄 돌리기를 끝내야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요즘 공연계에서는 기본적인 통계부터 공개하고 공유하자는 통합전산망 구축 논의가 활발하다.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일단 투명성부터 확보하는 게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치부를 처음 공개할 때, 무척 아프고 부끄럽겠지만, 그래야 우리 뮤지컬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