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리스트 아닙니다, '소설리스트'입니다
[스페셜리스트│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 문화부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8.27 1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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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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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리스트’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소셜리스트(Socialist)가 사회주의자라면, 소설리스트(Sosullist)는 소설주의자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겠네요. ‘소설의 리스트’라는 중의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글은 ‘소설리스트’에 대한 응원입니다.
소설가 김연수·김중혁, 번역가 김현우·박현주, 서평가 금정연·이다혜, 팟캐스트 라디오 제작자 준, 독자 김준언 등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소설리스트입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sosullist.com. 트위터로도 그때 그때 소식을 알리죠. 매주 나오는 신간 소설의 리스트를 열거하고, 평가하고, 별점도 매기고, 본격 리뷰도 하고, 또 예쁜 표지에 대해서는 칭찬도 하고 말이죠. 흥미로운 리스트 소개도 있습니다. 가령 소설가 김연수의 ‘내가 3번 이상 읽은 중단편집’같은 온건한 리스트, 서평가 금정연의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 읽지 않을 소설들’같은 과격한 리스트에 시선이 멈추는군요.
신간 소설을 소설가와 그 친구들이 소개하고 평가한다?
어쩌면 문학 담당 기자들을 분노 혹은 좌절하게 할 이 아이러니한 시도는 역설적으로 소설의 위축 때문에 비롯된 일입니다. 대중과 문학의 거리가 멀어지고, 대중이 외면하니 신문에서 문학의 영토가 좁아지고, 신문의 영토가 좁아지니 새로 나온 신간 소설(특히 번역 소설)들이 지면에 소개될 가능성은 더욱 줄어듭니다. 악순환이죠.
자신들이 직접 만든 FAQ(자주 묻는 질문들)에서 소설리스트는 ‘왜 만들었나요’라는 질문에는 “살다보면 이유를 말하기 어려운 일들을 가끔 저지르는데 이것도 그런 일에 해당하네요”라고 유머 섞은 자문자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나요’라고 이어진 바로 다음 질문에는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 말하자면 문명의 쓰나미 같은 것이어서 다들 그저 휩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추세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구명정은 보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런 생각 끝에 김중혁, 김연수와 금정연이 먼저 만났고, 이어 금정연과 알고 지내는 김준언이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김중혁의 소개로 이다혜, 다시 박현주, 김현우, 준이 뜻을 같이 했다는군요. 이들 중에는 친구 사이도 있지만 대개는 서로 글로만 아는 사이였습니다.
소설리스트의 전제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신간 소설 한 권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 여기는 지옥이다.”
문학이 지옥에서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 한 권 읽을 수 없는 세상이 지옥이라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소설리스트의 모토는 이렇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을 지옥의 직업으로 삼지 말자.”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생계를 위한 직업이 되면 지옥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소설리스트의 필자들은 ‘열정’과 ‘재미’로 버텨보기로 했답니다. 출판사의 지원은 전혀 받지 않고, 필요한 비용은 갹출하고, 책도 자신들이 직접 사보고, 리뷰 대상은 투표로 결정한다. 이 사이트 안의 ‘별평’과 ‘리뷰’를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 등등이죠.
이들의 발랄한 시도 중에 ‘별평’이 있습니다. 200자 원고지 2~3매의 단평과 별점을 매기는 코너죠. 소설에 별점을 매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별 얘기도 나오고, 별별 얘기도 다 나왔다. 별 볼 일 없으면 좋겠다는 사람이나,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의견들도 있었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라는 의견들도 있었다(?). 별 관심 없는 것보다는 이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한다시면 별 수 없이 평을 하겠다.”
어쩌면 이들의 시도는 문학 담당 기자들과의 제로섬 게임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라임(rhyme) 섞은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들에게 정색하고 화를 내면 지는 법. ‘구매의 기쁨’이 아니라 ‘독서의 기쁨’을 되새기게 해 주는 이들의 경쾌한 노력은 문학의 확장으로 보는 게 당연하겠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소설리스트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