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대신 유병언을 선택한 유병'언론'들

[언론 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연일 사고다. 왜일까? 현 정권 들어서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고들을 지켜보면서 아마 누구라도 도대체 왜 이렇게 사고가 발생하는지 한번쯤 자문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모든 사고를 꿰뚫어 내는 명료한 이유를 찾을 순 없다. 다만 한 가지,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언론이 떠들어대는 ‘국민들의 안전 불감증’ 때문만은 결코 아니라는 확신은 있다.


사고가 반복된다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 가지는 사고가 나기 전에 충분히 준비를 못 했다는 것. 당연한 말이다. 준비를 잘 했으면 사고가 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사고의 ‘반복’은 이것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오히려 사고 전보다 사고가 난 후에 사고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우리는 이 사고로부터 어떠한 교훈을 얻었을까? 교훈은커녕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모든 언론이 사고원인에 대해 ‘급변침’ 때문이라고 떠들지만 왜 급변침이 일어났는지, 왜 급변침이 일어날 만큼 항해사가 배의 방향타를 갑자기 꺾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를 못한다. 


심지어 이러한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권위주의적 정권이 늘 시행했던 대대적인 안전 점검이나 관계법령 개정 같은 것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수입된 오래된 배였던 홍도 유람선이 얼마 전 암초에 걸려 침몰했다. 다행히 전원 구조되긴 하였으나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에서 발생한 유사한 대형 사고였다. 


급기야 공연 중에 환풍구가 무너져 내려 아까운 인명이 또 사라졌다. 기사를 접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저 평범하고 상식적인 수준으로라도 의제 설정이 되고, 이를 통해 정부가 안전이 취약한 부분을 찾아서 보완만 했더라면 이 아까운 생명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교훈’만 우리가 얻었더라면 적어도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참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4월16일 이후 보수언론과 종편의 최대 의제였던 유병언. 유병언에 대해 보도한 것의 반의반 만이라도 ‘안전’에 대해 보도했더라면 어땠을까?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라는 것도 아니고, 세월호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을 옹호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저 ‘안전’에 대해서 자기들이 가진 의제 설정에 관한 힘을 조금만 나눠줬더라면, 그랬더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연속해서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환풍구 참사를 통해서도 언론이 그리고 정부가 제대로 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전혀 그럴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그래서 실종자가 여전히 남아 있는 진도 앞바다 대신, 카카오톡을 비롯한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그러고 보면 애초에 그들이 정말 간절히 찾기를 원했던 사람은 세월호 실종자가 아니라 대통령을 모독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전혀 없진 않다. 안전 대신 유병언을 선택한 ‘유병’ 언론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엉뚱한 쪽에 집착하게 되면 결국 같은 사고가 반드시 반복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타 언론까지를 포함하여 최근 들어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다고 생각하는 점이 하나 있다. ‘세월호 특별법’을 애초에 그와 같은 말이 아닌 ‘세월호 진상조사법’이라고 불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아니면 ‘세월호 안전법’도 좋고. 전혀 다른 이유긴 하지만 언론 전체가 각각 얻어야 할 교훈을 잊지 말고 얻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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