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상실 결정은 한마디로 이 사회의 법치주의의 수준을 보여준 사건이다. 347쪽에 달하는 결정문은 방대하긴 하지만 해산의 근거에 대한 논리와 사실근거는 빈약하다. 고심의 흔적은 묻어나지만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자주파 중심의 정당’이므로 위헌정당이라는 결론의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위 결론이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위 결론을 이끌어내는 근거도 빈약하다. 일부 소속 정당원의 활동을 곧바로 정당의 활동으로 대체하는 논리적 비약은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서는 이뤄지기 힘들다고 본다.
더욱이 헌법재판소는 법에 근거도 없이 해산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상실을 결정했다. 법치주의에 반한다. 헌법이나 국회법, 공직선거법, 헌법재판소법 등 어디에도 해산된 정당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헌법은 제64조에서 국회의원의 제명은 국회의 권한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그 사유에는 정당해산은 없다. 공직선거법도 당선효력 상실이나 무효인 경우를 규정하고 있으나, 이 역시 정당해산은 사유가 아니다.
공직선거법 제192조 제4항은 ‘정당의 합병·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이 변경된 경우 비례대표의원은 퇴직한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헌재는 이 규정 중 ‘해산’은 ‘자진해산’만을 의미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논리를 폈다. 이번 해산은 자진해산이 아닌 헌재 결정에 의한 것이므로 자격상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권리의 상실과 관련된 규정은 법에 명문화되어 있어야 하며, 그 규정이 모호할 때는 최대한 권리박탈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에서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공권력으로부터 최대한 인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법리는 헌법재판관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임에도 팽개친 이유는 뻔하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주어진 권한을 넘어선 초헌법적이다. 헌재 결정의 진정한 속내는 통진당 소속의원에 대한 치졸한 정치보복이라는 세간의 비판도 이래서 나온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비판 목소리를 종북주의자들의 반발이나 법치주의에 무지한 자들의 소행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 자체가 법에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무엇이 법치주의인지 먼저 되물어야 할 것이다.
헌재의 단 한 번의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은 해산되었다. 헌재재판관의 의견은 찬성 8, 반대 1이었다. 일반국민들의 의견은 좀 달랐다. 헌재 결정에 반대하는 의견은 휴먼리서치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35.5%, 중앙일보의 여론조사는 23.7%이다. 헌재보다 일반 국민들은 더 포용력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위헌정당해산이라는 조치를 둔 목적을 볼 때 이는 다수결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위헌정당해산 결정은 한마디로 정당에 대한 사형선고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생명을 뺏기 위해서도 3번의 재판을 거친다. 현 법제에서 정당의 생명은 단 1번 헌재의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찬성하고, 여론 조사결과 정당해산결정에 찬성한다는 일반 국민의 응답율이 60%를 넘었다고 하여 정당해산이 정당하다면 앞으로 소수정당은 어떻게 정치세력화할 수 있을까. 이 헌법체제에 맞지 않는 정당이라고 쫓아내는 것이 정당한 해법일까. 헌법재판관 일부는 통진당을 뱁새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에 비교하고 뱁새의 생존을 위해 뻐꾸기를 둥지에서 쫓을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뻐꾸기알도 함께 품었다고 해서 뱁새가 멸절되지는 않는다. 자연에서도 이처럼 공생이 가능하다. 사상과 이념의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공생이 불가능하다고 헌재가, 정권이 외치는 꼴이다. 그러나 재차 강조하건대 정당해산은 정당 지지자가 많은지, 적은지를 따지는 다수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소수의견의 포용 문제이다.
‘안녕들하십니까’로 시작했던 2014년이 저물고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바뀐 것은 달력밖에 없는 듯하다. 덕담 건네기가 쉽지 않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