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명명을 통해 구축된다

[언론다시보기]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현실은 명명을 통해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 실체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실체는 명명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표현하는 어휘가 몇 단어 안 되지만 에스키모인들은 수백 가지의 표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동일한 눈을 보면서 우리와 에스키모인들은 다른 실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수없이 많은 의미화 투쟁이 이루어진다. 학생 인권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인 체벌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미화돼왔다.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 중 일부는 지금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정도의 폭력 피해자이면서도 그 표현에 익숙해져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의 매가 사라져 교육 현장이 혼란스러워졌다고.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한 세력과 그 지지자들은 이 상황을 ‘광주사태’라고 명명했다. 공권력으로 진압해서 해결해야 할 혼란스런 상황으로 규정한 것이다. 물론 언론은 그대로 받았다. 자연재해를 명명하는 ‘사태’는 이러한 현실 인식을 강화했다. 그리고 그것이 곧 현실이 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광주민주항쟁이라는 이름을 찾고서야 광주는 떳떳해졌다.


현실을 다루는 언론의 명명이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그 예는 너무나도 많다. 그 중 최근에 주목해봐야 할 것 중 하나는 ‘규제 완화’다. 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가 일방적이지만은 않다. 규제 완화 달성 목표를 수치화하거나 ‘규제 총량제’라는, 규제의 내용과 무관한 밀어붙이기 식 정부태도에 찬반의 논쟁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양쪽 모두 규제는 ‘있으면 불편하고, 없으면 좋은 것’이라는 정서를 전제하고 있다. 바로 ‘규제’와 ‘완화’가 지니는 명명의 힘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왜 규제가 필요할까? 규제는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유에 맡겨 두었을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피해, 즉 강자에 의한 약자의 피해 또는 사회 전체의 피해를 막고자 함에 있다. 다시 말해 공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것들이다. 따라서 규제의 또 다른 이름은 공적가치의 보호이고, 규제완화는 공적 가치의 축소다. 물론 규제가 애초 합리적이지 않았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건이 변화하여 목표를 상실하였다면 규제의 폐지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치화된 목표 설정이 가능한 대상은 아닌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민영화’라는 표현이 있다. ‘민’은 ‘관’과 대구를 이룬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관의 역할이 적고 민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일견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소위 민영화는 사실상 ‘사영화(privatization)’다.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공공기관(업)을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으로 만드는 일이다. 공적 가치의 축소는 명약관화하다. 공적 가치 실현에 들어갈 자원이 개인 주머니로 들어가는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이 비효율적이면 사회적 감시를 통해서 효율화 시킬 일이지 사영화 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공기업의 사영화는 민영화라는 탈을 쓰고 진행되고, 이에 대한 시민의 심리적 저항을 약화시킨다. 각종 민자 사업의 예상되는 폐해를 은폐해왔던 것도 ‘민자’라는 명명이었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은 명명을 통해서 현실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론의 명명은 취재원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언론은 ‘사실’ 전달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 왜곡에 기여할 수도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기자는 취재원이 명명을 통해 현실을 규정하는 것을 냉정하게 비판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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