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일간지에서 요즘의 청년층을 두고 ‘달관 세대’라는 이름을 붙였나 보다. 어차피 제대로 취업하기도 어렵고, 취업을 해도 격무에 시달릴테니 차라리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적게 벌고 적게 쓰고 사는 게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생겨난 ‘달관 세대’라는 트렌드라는 게 기사의 요지다.
당연히 수많은 청년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주목할 점은 ‘달관 세대’라는 이름 짓기가 기사를 읽는 독자들의 생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지이다.
모든 이름 짓기는 단순한 표현이나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어떠한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대상의 의미가 변화한다. 긍정적인 것이 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것이 되기도 하며,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한다. 당연히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 역시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특히 단어가 내포한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는 명시적인 설명과 달리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 짓기에 사용된 단어가 지닌 의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자신이 거기에 크게 영향 받고 있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진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태안 기름 유출’ 사고라는 이름 짓기다. 수백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유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던, 즉 그러한 ‘반응’ 혹은 ‘태도’를 이끌어냈던 바로 그 이름 짓기 말이다. 만약에 ‘삼성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라고 이름 지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갔을까?
IMF 외환위기도 아주 재미있는 이름 짓기다. IMF는 외환위기를 발생시킨 주체가 아니라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수습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IMF 외환위기라 불렀기 때문에 마치 외환위기 주범이 IMF인 것처럼 느끼곤 한다. 동시에 외환위기의 진짜 주범은 은폐된다.
오늘날 우리나라 청년들을 지칭하는 대부분의 말들은 부정적 뉘앙스가 강하다.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등과 같은 말들인데, 이는 저성장 기조 속에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관 세대’는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우선 ‘달관’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 자체보다는 그 현실을 대하는 청년들의 ‘반응’혹은 ‘태도’에 초점을 맞춘 말이다. 자연스레 경제적 현실 자체보다는 이를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된다. 다음으로 ‘달관’이란 말 자체가 긍정적인 표현이다. 체념하고 사는 청년들을 비판하기보다는 은근히 긍정하는 의미를 지닌다.
위 두 가지를 정리하면 경제적 어려움 그 자체보다는 그걸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며, 특히 그에 대해 비판하고 분노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족하는 게 낫다는 식의 논리가 완성된다. 자연스레 비판하고 분노하는 청년들은 본의 아니게 미성숙한 이들이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이는 어려운 처지를 탓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서 극복하라는 논리와도 상당히 맞닿아 있다. 언뜻 보면 전혀 다른 논리 같지만 현실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복하든 받아들이든 현실에 대한 책임 역시 사회구조가 아닌 개인에게 지우고 있기도 하다. 전형적인 보수적 사고방식이고 요즘 말로 하면 ‘꼰대’식 논리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논리는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한 기성세대의 책임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기성세대가 듣기에 상당히 달콤한 말이라는 의미다. 그러고 보면 ‘달관 세대’라는 말은 결국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꽤 괜찮은 이름 짓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