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김영란법’을 보며 나는 ‘전성기 로마 공화정’을 생각했다. 전성기 로마는 ‘건강한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다. 대략 기원전 287년부터 기원전 133년까지이니 그리 길지는 않은 기간이었지만 귀족과 평민이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번영을 만들어냈다.
‘김영란법’이 24일 국무회의를 통과,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다”, “과잉입법이다” 등의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해 과도하게 만연해 있는 접대와 청탁, 뇌물과 전관예우 문화가 부정부패로 연결되어 공동체의 건강성을 해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바꾸려면 특히 초기에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우선 기득권을 갖고 있는 지도층이 앞장서 이끌어야한다. 전성기 로마처럼 말이다.
잠시 고대 로마로 가보자. 전성기 로마는 건강했다. 청빈했다.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에서 한 말처럼 재산으로 정치적 성공이나 명예를 얻을 수 없었고, 따라서 시민들은 재산 등의 사적 요소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능력을 높이려 노력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공동체 문화이고 사회 기풍이다.
우선 다수의 공직자들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소(少) 스키피오 장군이 특히 칭송을 받았다. 파울루스 장군도 마케도니아 정복으로 막대한 재산을 확보했지만 기꺼이 그 돈을 모두 국고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자신의 집으로는 ‘불멸의 명성’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평을 얻었다. 부럽고 멋진 리더의 모습 아닌가. 그런 지도층이 한 둘이 아니었다. 킨키나투스를 보자.
“집정관 미누티우스가 그의 군대와 함께 아이퀴인들에게 포위공격을 당하자 로마는 패배의 두려움에 휩싸여 최후의 수단인 임시 독재집정관을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로마가 선출한 사람이 킨키나투스였다. 원로원의 사절이 선출 사실을 알리고 로마 공화국이 처한 위험을 설명하기 위해 킨키나투스를 찾아갔다. 그때 그는 자신의 작은 농장에서 손수 노동을 하고 있었다.”(예병일의 ‘정치의 미래와 인터넷 소셜 의지’, 69쪽)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로마에서 가난이 명예롭게 여겨지고, 킨키나투스와 같은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4유게라의 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독재집정관이 되어 위기를 극복한 후 다시 자신의 작은 농장으로 돌아갔다.
최근 최장수 중국대사를 지낸 김하중씨의 인터뷰 기사가 한 신문에 실렸다. 중국 인맥이 화려한 그다. 많은 기업들이 영입제안을 했지만 그는 공직을 떠난 뒤 7년째 집에서 책 쓰는 일만 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금으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회사나 특정 조직을 위해 쓰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선’했다.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우리는 그동안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이 순간에도 전직 해군참모총장 등 군 장교들이 방산비리로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공직퇴임 후 기업이나 로펌에 들어가 ‘전관예우’로 큰돈을 버는 장차관이나 대법관, 검찰총장들이 여전하다. 리더들이 이런 모습으로 사익을 좇고 있는데 시민들에게만 로마처럼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번영하기 위해 필요한 선결 조건은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는 청빈한 지도층의 존재이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법제도와 공동체 문화다. 우리 언론의 역할도 이 지점에 존재한다.